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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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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 5회 | 20050424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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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 1부-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 내용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규모로 많은 지식 인들이 공장에 들어간다. 그 동안 이들은 '위장취업자', '운동권' 그리고 '지하세력' 등으로 불려왔다. 대한민국 진보세력의 역사는 그들만의 역사 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겪어왔던 갈등과 고민이 함께 담겨있다 . 이들 진보세력들이 지난 25년간 겪어왔던 열정과 한계 그리고 오류를 담백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진보세력의 성찰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며, 이들과 동반해야할 건강한 보수에게도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 다. 제1부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은 1980년대 위장취업자들에 대한 이야기 다. 그들은 군부독재에 대항해 혁명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가슴 설레는 미래와 낭만을 뒤로한 채, 공장으로 갔는가? 당시 공장안에 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노동자들은 위장취업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았 는가? 그 동안 위장취업자들의 이야기는 감춰지거나 왜곡된 형태로만 전 해져왔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사실을 있는 그대 로 드러내고 그들이 역사에 던지는 질문을 되돌아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1:05- 전CM 02:38- 오프닝(김환균) 03:28- 혁명을 선택한 학생들, 그들은 왜 공장으로 갔는가? - 1985년 구로동맹파업 농성, 인명진 목사(도시산업선교회) 인터뷰 - 윤난실.김문수.노회찬(당시 위장취업 학생) 증언 . 최환(당시 대검 공안부장) 2001년 인터뷰, 인명진(도시산업선교회 목사) 인터뷰 - 인생의 전환점 광주민주항쟁 . 윤철호.원희룡.김문수.김창한(위장취업 학생) 증언, 이해영(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 인터뷰 - 노동조합 정화 지침 .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임재수(당시 원풍모방 노조 총무) 증언 - 1982년 원풍노조 강제 해산 장면 13:10- 위장취업자들이 공장으로 가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과정 - 종교조직과 야학, 운동선배를 통해 현장 이전팀을 조직 체계적 공장 활동 준비 - 안종민(당시 야학교사 서울대), 당시 야학 노동자들 인터뷰 . 박순희(당시 원풍모방 노조위원장), 인명진(도시산업선교회 목사) 증언 - 위장취업자의 일기 . 민경서.이선주.윤난실(위장취업) 증언 - 주민등록 위조, 직업훈련원에서 기술 취득 . 노회찬(1982년 위장취업) 인터뷰 22:29- 위장취업자들에게 냉혹했던 공장의 현실 -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했던 힘든 노동과 난관들 - 공장 노동자 숙소 벌집방 설명하는 심상정 의원 - 고 박종철의 공장활동 기록 - 흔했던 손가락 절단 사고 - 위장취업자 조정식 산업재해로 사망, 부모 인터뷰 . 윤난실.노회찬.심상정(위장취업) 인터뷰 - 공단소식 유인물 . 심상정,박상옥,박성인.최봉근.전성(위장취업) 증언 38:35- 구로동맹파업에서 정권과 충돌하다 - 1985년 노동현장 노조 결성 본격화 노사분규 확산 - 1985년 국회 상임위 노동부장관 업무보고 장면 . 생산직 근로자도 경찰 신원조회 실시, 위장취업자 블랙리스트 . 단병호.김준용(당시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인터뷰 - 특집방송 '위장취업 그 실태' 보도 장면 . 윤철호(위장취업), 윤혜련(가리봉전자 노조 사무국장) 증언 - 김덕순(당시 아세아스와니 해고노동자) . 해고 노동자 강간 미수범 회사 사주 폭로, 사과 편지 - 부천서 성고문 사건, 위장취업 권인숙 자필 진술서 . 1986년 성고문 폭로 범국민대회 장면 - 정권, 위장취업자 체제 저항세력으로 규정 탄압 . 85년 6월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명 구속 - 구로동맹 파업 - 파업 6일째 경찰 구사대 투입 농성 종결 . 2천여명중 700여중 해고 43명 구속 50:01- 다음회 예고 51:1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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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 4회 | 20050410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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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도와 국풍 81> 내용
광주 항쟁 1주년을 무마시키기 위한 행사로 알려져 있는 국풍 81. 5일간 16만평의 여의도 광장에서 만 삼천명의 출연자와 천만여명의 관람객이 동 원된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축제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신시대 저 항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김지하와 김민기를 포함한 민중문화운동 그룹을 체제내화 시키기 위한 허문도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었다. 허문도를 중심으로 한 그의 하수인들과 이들에 대항하여 참여를 거부했 던 그 반대진영의 처절한 싸움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최초 공개한 다. 00:00- 타이틀 00:28- 전CM 01:46- 프롤로그 08:30- 오프닝(김환균) 09:27- 전국대학생민속축제에서 국풍 81로 탈바꿈한 관제행사 - 허문도의 계획으로 알려져 있는 국풍 81. 이것의 효시는 '전국대학생민속축제' 였다 - 행사 참가 요청받은 연탈(전국대학생 탈춤반 연합), 기획 의도 포착 . 주수홍.박상대(고려대.한양대 탈춤반 78학번), 김웅래(당시 KBS PD 국풍81 연출), 이원홍(당시 kBS 사장) 인터뷰 - 국풍 관련 정부 문서 . 유신체제하에서 탄압받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포섭하려 했다 실패, 각 대학의 연탈반 학생들에게 접근 . 김기수(봉산탈춤 전수자).임진택(당시 KBS PD, 국풍81 연출 거부로 사표) 인터뷰 - 80년 12월 출소한 김지하를 찾아 갔던 허문도.김지하 22:26- 전두환의 비서실장 허문도, 5공의 체제 홍보 담당 - 허문도, 일본 유학시설 메이지유신과 천황주의에 심취 . 김지하(시인), 이낙연(당시 동아일보 기자) 인터뷰 - 국풍81은 허문도 작품 . 이상주(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인터뷰 - 대학 탈춤반 시위 주도 , 정연도(서울대 탈춤반 75학번) 인터뷰 - <소리굿 아구>, 70년대 일어난 마당극 운동의 시발점 . 79년 6월 서울 제일교회 공연 장면 - 한두레(대학 탈춤반 출신들의 모임) 저항적 문화운동 구심점 . 채희완(서울대 탈춤반초대회장, 한국민족극운동협회 회장), 김지하 (시인) 인터뷰 38:06- 국풍 81, 그 이면에 숨겨진 파시즘 - 당시 KBS PD 국풍81 연출한 정회천.김웅래 . 신중현(가수).이용(가수) 인터뷰 - 허문도 국풍81 한달전 서울대 농대 방문 후배들과 회식 참가 요청 . 학생들 거부 . 김장욱(서울대 농대 농악반 78학번) 인터뷰 - 군대 복무중, 공무원 신분인 서울대 농학반 출신들 동원 출연 - 81년 청와대 국풍81 관계자 위로 만찬 48:59- 에필로그 - 연탈 간부학생 대부분 군복무중 녹화사업 강제받다 50:25- 다음회 예고 51:03-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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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 3회 | 20050403 | 48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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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사형수와 푸른 눈의 투사들> 내용
오는 9일이면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된다. 그 러나 이 사건이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고문에 의한 사법 살인'으로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혁당 관계자들의 명예회복은 여전 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는 인혁당 사건 30 주년을 맞아 인혁당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인혁당 사 건을 재조명하려 한다. 00:00- 타이틀 01:03- 전CM 02:22- 프롤로그 04:51- 오프닝(김환균) 05:38- 인혁당 사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던 미국 - 제임스 시노트 신부(월요모임 회원), 이영교(민청학련 실종자 허재완 부인) 인터뷰 -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민청학련 시위, 긴급조치 4호 선포 10:56- 북한 지령 받은 인혁당, 민청련 조종 정부 전복 기도 - 짜여진 각본대로 조직도 진술서 고문으로 조작 - 1974.4.25 중앙정보부 민청학련 사건 수사 발표 장면 . 짜여진 각본대로 조직도 진술서 고문으로 조작 . 임구호.나경일(2차 인혁당 사건 선고자), 유봉인(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인터뷰 - 1964.8, 1차 인혁당 사건 . 강창덕.유인태.전창일.김한덕.김종대(고문 피해자들) 인터뷰 - 비공개 군법재판에서 사형 선고, 가족들 인터뷰 19:07- 한국 민주화의 벗들,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 - 1972년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50여명의 외국인들은 학생들의 잇따른 구속, 언론 자유에 대한 억압, 인권 유린 등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해 '월요모임'이란 모임을 통해 활동 - 조지 오글(목사, 월요모임 회원) 인터뷰, 인혁당 가족들 찾아와 호소 - 매월 발간하는 소식지를 통해 인혁당 사건 알림 . 린다 존스.루이즈 모리스.제임스 시노트(월요모임 회원) 인터뷰 - 오글 목사, 당시 기독교회관 목요기도회 참석해 인혁당사건 폭로 . 조지 오글(목사, 월요모임 회원), 이해동(목사, 목요기도회) 인터뷰 25:23- 미국은 냉전체제를 유지하고 자국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묵인 - 월요모임 회원들, 백악관에 편지 포드 대통령 방한 취소 요청 . 제임스 시노트.조지 오글.수 라이스.린다 존스(월요모임 회원) 인터뷰 - 1974.11.23 뉴욕 타임즈, 월요모임 기자회견 . 미국내 박정희 정권 반대 시위 - 한국정부 오글 목사에 추방 명령, 오글 목사가 낸 동아일보 광고 . 인혁당 가족이 준 금반지 33:03- 사법 살인과 추방된 투사들 - 인혁당 관계자 등 8명 4월 8일 대법원의 사형 판결 20시간도 채 되지 않아 성급하게 처형 - 인혁당 관련자들의 통방 증언 . 김지하(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 박형규(목사,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0개월 선고) 인터뷰 - 1975.2.15 민청학련 관련자 석방 - 사형 소식 듣고 절망과 분노했던 가족들과 월요모임 회원들 . 루이즈 모리스(월요모임 회원), 이용택(당시 중앙정보부 6국장), 제임스 시노트(신부, 월요모임 회원), 조지 오글(목사, 월요모임 회원) 인터뷰 - 경찰 송상진 시신 탈취 화장 목격한 문정현.함세웅 신부 인터뷰 - 1975.4.30 제임스 시노트 신부 추방, 공항에서 두건 시위 - 중곡동 메리놀외방전도회, 2003년 다시 돌아온 시노트 신부 - 오글 목사 저서 '20세기 한국의 이야기' 45:56- 다음회 예고 47:1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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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 2회 | 20050327 | 49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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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와 문세광, 2부- 문세광을 이용하라> 내용
육영수 저격사건의 범인 문세광의 본거지 오사카에는 이 사건이 조작됐 다고 주장하는 증인들이 있다. 문세광의 가족과 한청 동료, 오사카 중앙 정보부 정보원들의 증언은 한국의 수사기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인권 탄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박정희. 특히 DJ 납치사건은 한일관계까지 악화시켰다. 이때, 육영수 저격사건이 일어 났다. 한일관계는 역전됐고 박정희는 난국을 돌파했다. 과연, 육영수 저격사건은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중앙정보 부의 공작이었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문세광의 일본 행적을 좇아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 육영수 저격사건은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중앙 정보부의 공작? 문세광 행적과 배후 추적 02:06- 전CM 03:24- 한국의 수사 기록과 다른 오사카 문세광의 가족과 한청 동료 증언 - 김우식(문세광의 동료), 김기춘(중앙정보부 법률 보좌관) 인터뷰 . 김기춘(당시 중앙정보부 법률 보좌관) 인터뷰 - 문세광이 위장 입원해 사격 연습했다는 아카후도 병원 . 강철(당시 병원 이사장) 인터뷰 - 재일한국청년동맹 오사카 본부 . 김정부(문세광의 동료), 김호룡(수사 발표 배후 조종자) 인터뷰 - 문세광이 김군부에게 보낸 편지 보도한 1974.10.9 통일일보 . 김군부(당시 한청 중앙위원회 의장) 인터뷰 - 중앙정보부 제6국 보고서, 문세광 편지 내용 보고 . 김우식(문세광의 동료) 인터뷰 16:40- 문세광의 자필 활동 수첩 최초 공개 - 김일성 주체사상 찬양하는 글 기록된 문세광 수첩 . 김기춘(당시 중앙정보부 법률 보좌관), 곽일출(문세광의 동료) 인터뷰 - 문세광이 살았던 오사카 이쿠노구 빈민촌 . 김정부(문세광의 동료) 인터뷰 - 문세광을 찾아 온 낯선 인물 Y . 이태실(한청 동료), 한동원(당시 서울신문 취재기자), 김군부(당시 한청 중앙위원회 의장) 인터뷰 - 일본 특별수사본부 해체, 저격사건과 총련 무관 결론 31:43- 육영수 저격사건 한일문제로 비화 - 일본 시이나 특사 방한 육영수 묘소 참배 . 윤하정(당시 주일 공사), 김기춘(당시 중앙정보부 법률 보좌관) 인터뷰 - 일본 여권, 도난당한 일본 경찰 권총으로 저격 . 타메나(당시 아사히 취재기자) 인터뷰 - 주한 일본대사관 시위 군중 난입 등 반일 감정 확산 . 윤하정(당시 주일 공사), 이와세(당시 사이나 특사 비서),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 인터뷰 -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고립됐던 박정희 정권 극적 반전 .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 인터뷰 - 문세광 사형 선고.집행, 타메나(당시 아사히 취재기자) 인터뷰 45:36- 김상윤(김종필 전 총리 특보), 지난주 방송된 증인 증언과 관련 반론 46:51- 다음회 예고 47:56-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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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 1회 | 20050320 | 5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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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와 문세광, 1부- 중앙정보부는 문세광을 알았다> 내용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제 29회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곧이어 울린 7발의 총성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숨 을 거뒀다. 범인은 23살의 재일동포 문세광. 배후는 북의 사주를 받은 조 총련 정치부장 김호룡. 문세광은 대법원 사형선고 3일 만인 12월 2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32년. 2005년 1월 20일 사건관련 한일 외교문서 공개와 2월 24일 사건 수사기록 공개, 3월 15일 문세광 공소장 공개 등 관련 문서의 잇따른 공개는 사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장 국립극장 총격 장면, 당시 목격자 수사 담당자 증언 02:47- 전CM 05:19- 오프닝(김환균) 06:13- 공개된 수사기록의 저격현장, 수사기록 - 이신열(서울대 음향공학연구실 공학박사) 인터뷰 09:43- 사건 당시의 TV 녹화 화면을 분석한 결과 - 탁금선(당시 경축식 참가), 이신열 박사(서울대 음향공학연구실), 김동한(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 인터뷰 - 이건우(당시 서울시경 감시계장) 청문회 증언 장면 21:44- 30년만에 입을 연 배후의 인물 김호룡 - 문세광 진술, 직접 그린 그림 . 김일두(당시 수사본부장), 김기춘(당시 중앙정보부 법률보좌관) 인터뷰 - 배후로 지목된 김호룡 기자회견 장면 . 김호룡(당시 조총련 오사카 서지부 정치부장) 방문 인터뷰 - 문세광 진술 전에 이미 보도된 신문 기사들 . 김기춘(당시 중앙정보부 법률 보좌관) 인터뷰 31:59- 문세광의 당시 행적 - 오사카 요주의 인물 문세광, 한국청년동맹 과격파 . 권영길(당시 서울신문 취재기자) 인터뷰 - 몸수색 하지 말라는 경호실장의 갑작스런 지시 . 백상규(당시 청와대 경호관) 인터뷰 - 당시 청와대 경호계장 방문, 당사자 인터뷰 거부 . 한태수(당시 조선호텔 당직 지배인) 인터뷰 - 문세광 한국 입국 후 사건 전 행적 . 당시 조선호텔내 여행사 직원 전화 인터뷰 .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 함구 당부 47:34- 다음회 예고 48:43-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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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 13회 | 20040801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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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포로, 3부- 철조망의 안과 밖> 내용
1951년 7월에 시작된 휴전회담, UN측은 포로들의 인권을 강조하며 자유 송환을 주장, 공산군측은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원 송환을 주장하며 휴전 회담은 지루한 공방을 계속했다. 양측의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설전 을 벌이는 동안 전장에서는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 나간다. UN측이 포로 문제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이 되고, 양측은 서로가 승리자라며 선 전한다. 전쟁이 끝난 후 휴전회담의 제물이었던 양측의 포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남과 북에는 억류된 채 잊혀진 포로들이 남아 있다. 국군포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 으며 최근까지도 국군포로 출신의 탈북자들에 의해 미송환 억류 포로 문 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미송환 포로 문제 어떻게 극복 할 것인지 알아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1:24- 전CM 04:11- 지난 이야기 05:20- 오프닝(고원정) 05:58- 이승만대통령 반공포로 2만7천명 석방에 세계가 경악 - 안병석(가명)씨 증언에 의한 재연 . 대한반공청년단 단원증 . 김선호(유엔 전범조사과) 인터뷰 - 이승만 정권 지지도 추락 . 미군에 몰려들어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들 - 북진통일을 정치적 구호로 내건 이승만 . 반공청년단 탄원서, 이승만대통령 영천 포로수용소 방문 -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반공포로 석방, 당시 포로들 증언 . 반공포로 은닉에 적극 협조하는 경찰과 주민들 . 7일 후 월터 로버트슨(미 국무차관보) 내한 18:43-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이승만의 생색내기 쇼 -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외교적 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고 하나, 1953년 6월 6일 아이젠하워는 친서를 통해 휴전회담 협조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약속했었다. - 홍석률(성신여대 교수), 윌리엄 스툭(미국 조지아대 교수) 인터뷰 - 모택동 반공포로 석방 보복으로 대대적 공격 지시 . 국군 만5천명 전.사상자 피해 22:35- 무명 전사들의 전쟁 그 이후 - 1958년 8월 포로교환, 윌리엄 딘(미 24사단장) 등 만2천명 송환 . 유엔군이 지급한 군복을 벗어 던지며 북으로 떠나는 인민군 포로 7만여명 - 판문점에서 중립국 감독하에 포로 7천명 북한 송환 설득 심사 . 수용소 북한 송환 설득 방송 - 백응태(대한반공청년단 연락부장) 기록에 의한 재연 . 설득 반대시위 주도, 이탈자 주의 - 인민군 포로 3만5천명 대한민국으로 귀환 . 처음 환대와 달리 갈수록 요시찰 대상자로 지목 . 귀환 포로 대부분을 국군에 편입 - 53년 8월 판문점서 귀환한 국군포로 7천명 용초도로 이송 . 용초도 수용소서 특무대로부터 2달간 사상 검증 가혹한 신문으로 연일 자살자 속출 . 귀환 국군포로 증언 36:31- 잊혀진 남북한 미송환 포로들 - 40년만에 귀환한 조창호(1994년 귀환 국군포로) - 휴전회담시 국군포로 6만5천명 중 8천7백명만 귀환 . 해방전사란 이름으로 인민군에 편입된 국군포로들 - 광주 중앙 포로수용소 . 미송환 인민군 포로 유기진, 허찬형 증언 . 국제법상 포로 아닌 범죄자로 몰려 선택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형무소로 갔던 미송환 인민군 포로들 49:05- 클로징(고원정) 50:55- 다음주 예고 51:4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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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 12회 | 20040725 | 5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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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포로, 2부- 철조망속의 전쟁> 내용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나뉘어진 거제도 포로 수용소. 이들은 판문점 천 막 안의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철조망 안의 전쟁을 벌인다. 수용 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는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다. 1952 년 5월,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진다. 치 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을 거제도로 집중시 키며 유엔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유엔측의 자유송환을 무력 화시키고 휴전협상을 북에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에서 실행된 것이었다. 1951년부터 시작된 UN의 민간정보교육 프로그램은 포로들의 사회적응훈 련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CI&E 프로그램은 '반공주의자'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었다. 제네바 협정을 무시 하고 UN군 측이 포로들에게 전향공작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포 로들에 대한 북한의 사상교육을 비난해 왔던 UN군의 전향공작의 실체를 밝힌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22- 전CM 05:10- 지난 이야기 06:39- 오프닝(고원정) 07:57- 세계가 주목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 리차드 언더우드(당시 휴전회담 통역관), 조 맥패든(당시 거제도 폭동 진압부대) 인터뷰 09:57- 친공포로들의 거제도 세력장악 - 배종엽(거제도 주민, 당시 미군부대 근무) 증언 - 당시 인민군 포로: 손구원(현 통일안보중앙협의회 회장), 정치영 증언 13:51- 뒤늦게 도착한 대한반공청년단 - 안병섭(가명)의 증언 - 김선호(당시 유엔 전범조사과 소속) 증언 15:14- 친공포로들의 해방동맹 조직 - 정병준(목포대 역사학 교수) 인터뷰 16:00- 통제불능의 전쟁터가 된 포로수용소 - 고영근(85수용소, 현 한국목민선교회 목사), 박재만(82수용소), 최희원(91수용소), 현동화(66 장교수용소, 현 인도 한인회장), 이재철(83 수용소, 현 관악 중앙교회 목사), 심채보(73 수용소), 현순호(74수용소, 현 숭실교회 목사) 증언 19:57- 포로 전향공작 - 기광서(조선대 정치외교학교수), 구본건(당시 합동통신 종군기자) 윌리엄 스툭(미 조지아대 교수), 정병준(목포대 역사학 교수) 인터뷰 - 홍보영화 제작, 포로올림픽 개최 - 공산측의 세뇌공작 . 조창호(전 국군 포로, 1994년 귀환), 패트릭 퀸(전 유엔군 포로) 증언 - 유엔의 CI&E 프로그램 . CI&E 프로그램: 민간정보교육 . 김명회(전 유엔 정보교육국 소속, 현 한국학술원 원장), 장대익(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군종신부), 스탠리 웨인트럽 (당시 미군 정보장교), 박재만(82 수용소 감찰대원) 인터뷰 29:44- 친공포로들의 활동 - 한승남(77친공 수용소), 현동화(66수용소, 현 인도 한인회장) 증언 - 친공포로들의 전술교본, 거제도 점령작전 32:29- 휴전회담, 포로송환 논의 - 리차드 언더우드(당시 휴전회담 통역관), 유재흥(당시 휴전회담 한국측 대표), 조성훈(군사편찬위원회), 선즈화 (한국전쟁 전문가), 양꿰이숭(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인터뷰 35:49- 포로 분류심사 실시 - 당시 포로: 손구원, 김창기, 심채보, 한승남 증언 - 반공청년단의 이탈자 견제행위 . 혈서와 문신 . 심채보, 한승남, 최희원, 손구원, 고영근 증언 . 이해당(소설가, <뜨거운 눈밭> 저자): 반공포로의 증언 - 친공포로들의 강제송환 요구, 도드 준장 납치 . 정치영, 김명회(전 유엔 정보교육국 소속) 증언 . 윌리엄 스툭(미국조지아대교수) 인터뷰 - 공수특전부대를 동원, 수용소 진압 . 조 맥패든(당시 거제도 폭동 진압부대) 인터뷰 47:35- 거제도 시대의 끝, 철조망속의 싸움은 계속 됨 - 막사철거후 암매장 시신 발견: 좌우익포로들의 참혹한 싸움의 실상 - 거제도 송정리 포로 공동묘지(1200여개의 포로 묘지) 49:17- 다음이야기 예고 50:45-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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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 11회 | 20040718 | 50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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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포로, 1부- 철조망속의 지배자들> 내용
오는 27일이면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51년, 휴전협상이 진행된 2년은 전 쟁을 끝내기 위해 전투를 계속해야 하고, 살육을 그만두기 위해 살육을 계속해야 하는 역설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지루하고 논쟁적이었 던 '포로' 문제, 하지만 그만큼 주목받지 못한 문제도 드물다. 국군포로 의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른 후에도 이 문제는 제대로 천착되지 못했다. 남과 북을 위해서 총을 들었다가 포로가 된 사람들, 그들은 전쟁의 막바 지에 포로가 아니라 전사로서, 다시 한번 남과 북을 위해 싸워야 했다. 휴전은 포로들의 인권을 위한다는 이유로 포로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 은 전사상자를 내고서야 성취되었다. 전쟁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켰으며 , 이 땅의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전쟁포로, 그들은 이데올로기 전쟁에 동원된 도구가 아니었을까? 남과 북이, 유엔과 공산측이 다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이 전쟁에서 유일 하게 패자였던, 그러면서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포로들의 버려진 삶을 돌아보고, 무명의 전사들이었던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한국전쟁의 누락된 역사를 복원한다. 00:00- 타이틀 00:15- 프롤로그 01:19- 전CM 05:22- 오프닝(고원정) 07:08- 거제도 포로수용소 - 박상곤(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 인터뷰 - 당시 인민군 포로: 이상만, 이재철, 한승남, 현순호(현 숭실교회 목사) 증언 09:54- 부산 포로수용소 - 인민군 포로들 인터뷰: 안정일, 손구원, 정치영, 이진상, 최희원, 고영근, 유기진, 이찬근, 현순호 증언 - 지갑종(종군기자) 인터뷰 22:21- 길어진 전쟁, 유엔군의 참혹한 포로생활 - 박진홍(당시 국군포로) 증언 - 당시 유엔군 포로: 레이 멜린, 엘리엇 소틸로, 패트릭 퀸, 빌 졸렌호프 증언 25:48- 포로수용소의 새로운 지배질서 - prisoner of war: "전쟁포로" - 포로수용소 내의 자치조직 편성 - 당시 인민군 포로: 박재만, 최희원, 고영근(현 한국목민선교회 목사), 한승남, 손구원(현 통일안보 중앙협의회장) 증언 - 최고의 자치 권력기관, 감찰대 . 당시 인민군 포로: 박재만, 이찬근, 김창기 증언 - 대한반공청년단과 그 활동 . 대한 반공청년단의 성장에 유엔과의 협조가 존재했었음 . 안병섭(가명, 대한반공청년단의 숨겨진 실질적 리더), 김선호(박창모라는 가명으로 당시 유엔 전범조사과 중위) 증언 . 이관순(작고, 대한반공청년단 단장) 사진 44:51- 인민군 포로들의 거제도 이송 - 최희원, 이진상 증언 - 철조망속의 전쟁의 시작 . 해방동맹과 대한반공청년단, 포로수용소에서 생긴 두개의 국가 48:04- 다음회 예고 49:25-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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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 10회 | 20040711 | 54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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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그 해 여름 조문파동과 공안정국> 내용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무더웠다는 1994년 7월, 북한 주석 김일 성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사 망한 김주석에 대한 조문 표시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국 이 몸살을 앓았다. 같은 시기 터져 나온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 언'은 언론을 통해 연일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공안정국 조성의 역할을 충 실히 수행해냈다. 바로 10년 전, 이 곳에서 벌어졌던 조문 파동과 사상시 비를 뒤돌아본다. 사상과 이념의 자유,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포용 수준이 그 사회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 는 시간을 갖는다. 00:00- 타이틀 00:16- 프롤로그 01:24- 전CM 03:57- 김일성 주석 사망과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 - 북한의 발표 . 1994.7.9 조선중앙방송 보도 - 김일성 사망 보도를 접한 시민들 -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 미국 클링턴 대통령 기자회견 . 남북의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 재추진 지지 - 중국의 우호관계 재확인 - 평양 현지 보도 . 장해성(전 조선중앙방송 기자) 인터뷰 - 김일성 북한 주석 생전 마지막 육성 - 남북정상회담의 추진 . 제임스 레이니(당시 주한 미국대사), 정종욱(당시 외교안보수석) 인터뷰 11:26- 조문 파동에 휩싸인 대한민국 - 이부영(당시 민주당 의원), 구필모(상이군경회 기획실장) 인터뷰 - 학생 운동권의 적극적인 김일성 사망 애도 표현 . 김현준(94년 한총련 의장) 인터뷰 - 불법행위가 된 조문행위 . 강희남(당시 조문방북 시도), 최환(당시 대검 공안부장) 인터뷰 - 북한 조기 붕괴론과 상반된 외교적 태도 . 김근식(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로버트 갈루치(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 케네스 퀴노네서(당시 북미협상팀) 인터뷰 20:15- 김영삼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분노 - 장해성(전 조선중앙방송 기자), 김근식(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인터뷰 21:21- 김일성에 대한 평가의 시작 - 정지환(<대한민국 다큐멘터리>저자), 박범진(당시 민자당 대변인) 인터뷰 24:34- 남북 전쟁 시나리오와 김영삼의 태도 - 한완상(전 통일부총리, 2000년 인터뷰) - 서울 불바다 발언 - 수구세력과 언론의 비난, 강경책 요구 . 최민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인터뷰 26:49- 서강대 박홍총자의 주사파발언과 파동 - 함세웅(당시 정의구현 사제단 공동대표), 하성봉(당시 대검 출입기자), 최환(당시 대검 공안부장), 박홍(서강대 이사장), 정지환(시민의 신문 취재부장) 인터뷰 - 박홍 이사장 인터뷰, 10년전 발언사실 부인 - 미국의 '반 애국행위 청문회' . 정지환(<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저자) 인터뷰 - 계속된 주사파 색출바람 . 대학 강의교제 검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 정진상(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유초하(당시 사민청 시민학교 관련수배, 충북대 철학과 교수), 박건식(당시 종로서 출입기자) 최환(당시 대검 공안부장), 김동춘(<분단과 한국사회> 저자) 인터뷰 43:26- 공안수사의 피해자들 - 이광철(94년 간첩혐의로 수배, 현 국회의원) - 청소년 단체 '샘' 사건 . 당시 사건관련 여고생 - 94.10 독일유학생 간첩단 사건 . 당시 사건 관련 유학생 49:17- 언론이 이끌어낸 대북관계의 결열 - 셀리그 해리슨(북한 전문가), 김근식(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최민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인터뷰 51:34- 남아있는 냉전의 그림자 53:47- 다음회 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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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 9회 | 20040704 | 53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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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4일 박정희와 김일성> 내용
32년 전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은 그 후 남북 대화의 이정표가 되었다 .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조국 통일 3대 원칙은 6.15 선언으로 이 어졌는데, 당시 냉엄한 남북대결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선언은 곧 통일이라도 될 듯한 기대로 온 국민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약 1년 만에 대화는 중단됐고 체제 경쟁이 더욱 심화됐다. 남과 북이 대화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국내외의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남과 북 의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이 선언을 어떻게 활용하였는가? 당시 회담 에 참여했던 당사자들과 북측 인사들의 증언으로 이 회담의 비화를 알아 보고, 최근 기밀 해제된 NARA 문서를 통해 한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과 해 결 양상을 살펴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42- 전CM 04:15- 남북공동성명의 발표 - 장해성(통일정책연구소 연구원), 황영숙(실향민), 이옥순 (실향민) 인터뷰 07:03- 공동성명 발표직전 몇년간의 남북의 관계 - 강상욱(1969~70년 청와대 대변인), 장해성(통일정책연구소 연구원) 인터뷰 - 미국과 한국의 남북대화에 대한 논의 . 다니엘 오도노휴(1972년 주한 미대사관 정무참사관),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인터뷰 11:32- 닉슨 독트린 -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교수), 우승지(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인터뷰 - 미국의 새로운 동아시아 정책, 주한미군 철수 주장 . 북한에 선의의 체제경쟁 제안 . 폴 클리블랜드(1070~73 미국 아태차관보 비서관), 강상욱(1969~70년 청와대 대변인),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교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 석좌교수), 오도노휴(주한 미대사관 정치참사관) 인터뷰 -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 데이비드 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 석좌교수), 오도노유(당시 주한 미대사관 참사관) 인터뷰 - 중국의 데탕트 무드 조성 . 돈 오버도퍼(<두개의 한국> 저자),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교수) 인터뷰 19:52- 북한, 서방세계에 문호개방 - 샐리그 해리슨(72년 워싱턴포스트 도쿄지국장) 인터뷰 - 북한의 고민 . 샐리그 해리슨(72년 워싱턴포스트 도쿄지국장), 강인덕(전 통일부장관), 안찬일(건국대 정치학과교수),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오도노휴(당시 주한 미대사관 정무참사관) 인터뷰 24:32- 남북 대화의 시작 - 이병웅(대한적십자사 총재특보), 정홍진(당시 적십자 예비회담 남측대표), 유재흥(1971년 국방장관) 인터뷰 25:50- 정홍진의 비밀회담 제의 - 신변안전보장각서와 위임장 발부 27:05- 이후락의 북한 비밀방문 - 유재흥(1971년 국방장관) 인터뷰 - 이후락 육성 녹음테이프(88년 7.4 MBC라디오 인터뷰) - 평화통일 3원칙의 합의로 공동성명 발표 . 정홍진(당시 적십자 예비회담 남측대표), 송종환(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안찬일(건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 이병웅(대한적심자 총재특보) 인터뷰 34:35- 적십자 본회담과 남북조절위의 개최 39:12- 그러나 남북대화의 단절 - 서로 우위에 있으려는 정상들의 갈등 - 송종환(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정홍진(남북조절위 간사위원) 인터뷰 - 남한 10월 유신,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발표 . 이후락의 육성녹음 . 도널드 그레그(1973년 CIA 서울지국장),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인터뷰 - 북한의 대화중단 선언 46:34- 미국의 의도에 따라 진행된 남북관계 - 한홍구 교수, 장해성(통일정책연구소),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도널드 그레그(1973년 CIA 서울지국장) 인터뷰 49:24- 통일을 위한 씨앗 50:58- 다음회 예고 51:37- 후CM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