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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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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13회 | 20030504 | 57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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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무덤 청송감호소> 내용
청송군 진보면 천연의 요새와 같은 지리적 조건을 갖춘 청송감호소. 범 법자들을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하겠다는 군사정권의 초법적 의도가 반영 된 선택이었으며, 삼청교육대 실시와 더불어 행해진 전두환 정권의 치밀 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철저히 격리된 청송에서의 인권유린 실상은 처참 했다. 23년간 국민들의 무관심과 몰이해속에 국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남 용되어온 인권유린의 실태를 파헤쳐 본다. 00:00- 타이틀 00:26- 전CM 04:30- 2003.3.27 청송보호감호소 가출소일, 가출소자들 인터뷰 07:49- 2002.10.31 청송 제2보호감호소 보호감호제 철폐 요구 - 집단 단식 농성 돌입 10:59- 80.12.5, 사회보호법 국가보위입법회의 통과 - 삼청교육생 보호감호 결정고지서 - 이연수.이적.이병근.서영수 등(감호자) 회고 - 한상범(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14:41- 1980.8.4 불량배 소탕계획 발표 - 강지원(변호사, 당시 서울지검 검사) 회고 15:15- 1980.8.19 전국검사장회의 - 국가안보 및 사회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보고 - 강지원(변호사, 당시 서울지검 검사), 정갑섭(당시 교정국 관리과장) 회고 16:59- 감호소 후보지, 경북 청송군 진보면으로 선정 - 정갑섭(당시 교정국 관리과장) 회고 19:51- 1981.4~12 청송 제1감호소 공사 모습 - 1981.12.2 삼청교육 군감호자 수용 21:36- 1983.3 일반감호자 수용 시작 22:42- 청송감호소 범죄 구성, 피감호자 판결문 - 이상희(변호사), 강지원(변호사, 당시 서울지검 검사) 인터뷰 25:00- 81~88년 감호소 수용인원 - 박순애(청송감호소 교정위원), 이상희(변호사), 박찬운(변호사) 인터뷰 28:28- 감호소 내의 가혹행위 등 인권유린, 가출소자들 회고 30:23- 1998.9.27 청송교도소 개방, 조세형 생활 독방 31:29- 고 박영두(84년 청송교도소에서 사망) 35:01- 1985.9.22 1차 인질사건(교도관 6명 인질잡고 3일간 대치) - 윤정모(소설가), 현정덕(의문사위원회 박영두사건 조사관) 회고 - 고 박영두 구타 사망 세상에 알린 진영수(가출소자) 회고 39:36- 1987.7.31 단식사건(청송 제2감호소 1500여명 단식 참여) - 박순애(83~89년 청송감호소 교정위원) 인터뷰 41:48- 1988.10.15 청송교도소 및 감호소 국정감사 - 이치호(변호사,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 박찬운(변호사) 인터뷰 43:45- 1989.3.9 사회보호법 개정안 국회통과 - 배종대(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인터뷰 44:50- 1989.7.14 헌재 구사회보호법 제5조 1항(필요적감호) 위헌 결정 46:48- 근로보상금 내역, 가출소자들 회고 51:58- 사회보호법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 2003.3.11 사회보호법 위헌 헌법소원 청구 - 박찬운(변호사), 정동기(법무부 보호국장) 인터뷰 53:40- 에필로그 54:25- 다음회 예고 55:12-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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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12회 | 20030427 | 55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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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의 거울- SOFA> 내용
주한미군 주둔 58년. 과연 누구를 위한 소파였는가? 불평등한 조항을 두 고 개정이니 개선이니 말이 많지만 정작 소파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소파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소파의 개정에 대해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소파는 한미간의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양국간의 관계 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맹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파는 주한 미군의 지위협정이 아니라 미국에 있어서 동맹국의 지위를 나타내주는 동 맹국 지위협정이라 불리우며 소파의 타결은 항상 정치적인 흐름속에서 이 루어졌다. 1966년 소파 체결을 둘러싼 한미간의 정치적 거래와 비화(秘話 )를 통해 한미관계를 재조명해보고 평등한 소파의 전제조건은 과연 무엇 인지 알아본다. 00:00- 타이틀 00:26- 전CM 04:30- 프롤로그 06:43- 매향리 미 공군기 오폭 사건. 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규탄 시위 - 존 페퍼(월드폴리시저널 편집장) 인터뷰 08:24- 미군 수감자들 복역중인 천안소년교도소 - 김원웅(개혁국민정당 대표).최운상(당시 주미대사관 3등서기관).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10:59- 1953.10.1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 1954.1.14 기름 모으던 소년.소녀 총격 사건 - 1955.3.19 미군범죄 방지 요청하는 변영태 외무장관 서한 - 로버트 페컴(당시 미8군 법무감) 인터뷰 12:52- 1957.4.12 양주열차 강도 사건, 1957.9.15 군산소녀 총격 사건 - 박원철.오재희(당시 외무부 3등서기관.조약과) 인터뷰 14:19- 1957.9.16 미 국무부 차관 허터 방한, 1955 반둥회의 - 1957.10.3 금천역 중학생 총격 사건 - 박태균(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한홍구(성공회대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17:38- 해외 주둔 미군기지 보고서(내쉬 보고서) - 서헌주(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인터뷰 19:40- 1957.5.24 대만 미 대사관 습격 사건 - 1958.2.25 구두닦이 김춘일 린치 사건, 1959.12.31 포천 여인 페인트칠 사건, 1960.1.2 동두천 여인 삭발 사건 22:15- 1960.1.19 국회 소파 체결 촉구 결의안 채택 - 박태균(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엘머 훌렌(당시 미대사관 정치과 차장) 인터뷰 25:34- 1961.4.17 1차 소파협상 회의, 1961.11 박정희 방미 28:15- 1962.1.6 파주 나무꾼 피살 사건, 1962.5.28 파주 린치 사건 - 1962 고려대.서울대.대구대 소파 체결 촉구 대규모 시위 30:41- 1962.9.20 소파협상 재개, 당시 한국측 협상단 인터뷰 35:20- 1964.2.18 국회 소파 체결 촉구 결의안 채택 37:48- 1965.4.27 미 대통령 특사 롯지 방한 38:37- 1965.5 박정희 대통령 방미, 1965.6.22 한일협정 조인 - 1965.10.3 청룡.맹호부대 베트남 파병 -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한홍구(성공회대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43:11- 1966.1 험프리 미국 부통령 방한 - 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교수) 인터뷰 46:20- 1966.7.9 소파협정 체결, 1966.9.22 백마부대 베트남 파병 49:07- 1999.1.4 소파 1차 개정, 1992.10.28 윤금이 살해 사건 50:18- 2000.12.28 소파 2차 개정 - 존 페퍼('World Policy Journal' 편집장), 홍석률(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인터뷰 51:51- 에필로그 52:47- 다음회 예고 53:27-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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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11회 | 20030420 | 6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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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한미군 재배치 감축 문제가 제기되면서 미국의 구상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구상은 한국에서 지상군을 줄 이고 해공군을 중심으로 주한미군을 운용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만일 2사 단이 재배치되거나 감축될 경우 과연 한국군이 이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 을까 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되지만,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한국군이 DMZ 를 스스로 방어할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2사단 재배치와 감축을 통해 한국군의 군사적 책임과 역할은 증대 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른 향후 주한미군과 한국군과의 관계설정, 지 휘체계의 문제 등 한미동맹의 미래를 전문가들을 통해 전망해보았다. 00:00:00- 타이틀 00:00:39- 전CM 00:04:42- 특사단의 워싱턴 방문에서 나온 주한미군 재배치 감축 문제 - 유재건(민주당 의원), 장영달(국방위원장, 의원), 함택영 (경남대 교수) 인터뷰 00:06:46- 반미감정에 따른 주한미군철수론 - 장영달, 유재건, 찰머스 존슨(일본정책 연구소장), 테드 카펜터 (카토 연구소) 인터뷰 - 한국인들의 아킬레스건, 주한미군 문제 . 이문항(전 유엔사 특별 고문) 인터뷰 - 반미감정에 따른 주한미군철수론에 대한 미국측의 부인 . 리언 라포트(한미연합사 사령관), 토마스 허바드(주한 미대사) 인터뷰 00:10:43- 남한 내 미군 주둔 현황 - 윌리엄 휠 중령(미 2사단 47 기답대대) 인터뷰 00:11:31- 럼스펠드의 주한미군문제에 대한 구상 - 2.13 상원 청문회 - 데니스 블레어(전 미 태평야 사령관) 인터뷰 - 통일을 대비한 미군의 구조조정 . 브루스 베넷(랜드 연구소) 인터뷰 00:14:34- 2사단의 재배치와 인계철선 논란 - 이석복(전 한미연합사 부 참모장), 리언 라포트,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연구소 박사), 토마스 허바드 인터뷰 00:17:28- 한국군은 2사단의 공백을 메울 수 있나 - 폴 데이비스(랜드연구소), 함택영, 제임스 더니건(워 게임 전문가), 리언 라포트 인터뷰 00:19:33- 현재 한국군은 북한군의 남침을 자력으로 막을 방어력을 갖추고 있나 - 박선섭(한국국방연구원), 제임스 릴리(전 주한 미대사), 커트 켐벨(전 펜타곤 차관보), 함택영, 제임스 더니건, 마이클 오한론(브루킹스 연구소), 래리 워첼(해리티지 재단), 피터 헤이즈 인터뷰 00:21:46- 남한이 가지고 있는 북한 군사력에 대한 열등감은 어디에서 왔는가 - 한용수(전 인민군 13사단 근무), 테렌스 테일러(영국 국제전략 문제 연구소), 마이클 오한론, 폴 데이비스, 함택영 인터뷰 - 남북의 공군력 비교 . 래리 닉시(미 의회 조사국), 서재정(코넬대 교수) 인터뷰 - 남북의 해군력 비교 . 이철기(동국대 교수) 인터뷰 - 북한 병력의 실제 . 신도 에이이치(쯔꾸바대 교수), 한용수, 김형덕(전 속도전 청년 돌격대), 래리 닉시 인터뷰 -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남침 시나리오는 가능한가 . 함택영, 윌리엄 휠 중령, 제임스 더니건, 서재정, 래리 닉시 인터뷰 - 미군의 도움 없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억제력을 보유하고 있나 . 브루스 베넷, 함택영 인터뷰 00:39:08- 화학무기, 미사일과 핵개발을 수단으로 전쟁을 억제하고자 하는 북한 - 브루스 베넷, 찰머스 존슨, 함택영 인터뷰 - 부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반확산전략과 북한 정면충돌 . 부시의 "악의 축" 발언 . 박건영(가톨릭대 교수), 스티븐 위버(버클리대 교수), 피터 헤이즈 인터뷰 - 북한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미국의 군사적 선택 문제 . 제임스 릴리, 래리 워첼, 테드 카펜터, 브루스 베넷 인터뷰 00:44:38- 한반도 핵 위기 해결 방안 - 재래식 군사력 감축 . 마이클 오한론, 셀리그 해리슨(국제정책연구소), 박선섭 인터뷰 - 주한미군 문제(재래식 병력의 후방 배치와 연관) . 한용섭 인터뷰 00:48:13- 전시작전통제권 - 한용섭, 이문항, 박건영, 이철기, 서재정, 이석복 인터뷰, 리처드 롤리스(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 기자회견), 차영구 중장(국방부 정책실장, 기자회견) 00:55:08-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방안 - 셀리그 해리슨 인터뷰 00:58:55- 다음회 예고 00:59:26-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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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10회 | 20030406 | 53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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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의문사, 박창수는 추락하지 않았다> 내용
1991년 5월 6일 새벽,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박창수. 그 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전노협 산하 부산노련의 부의장을 맡고 있 던 인물이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수원지검은 명확한 사건 수사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추락 자살로 결론지었다. 더군다나 유족들과의 부검 합의를 깨고 백골단을 동원하여 영안실에 안 치된 박창수의 시신을 침탈, 강제부검을 시행한다. 왜 그들은 박창수의 죽음을 그토록 빨리 덮어버리려 했나?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2:36- 전CM 06:39- 입원한 병원에서 박창수 시신 발견 - 한상철(당시 한진중공업노조쟁의부장), 김형태(당시 담당 변호사), 당시 영도경찰서 정보과 형사, 당시 경기지부 안기부 요원 인터뷰 09:05- 박창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옥상 투신 - 박창수 사인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단 발족 - 김문수(당시 민중당노동위원장) 인터뷰 - 한진중공업의 노조위원장이었던 박창수 - 투신 자살로 사인을 결론지은 검찰 - 박창수의 죽음과 잇따르는 노동자, 학생, 재야인사들의 시위 - 박창수는 어떤 사람인가(자살할 만한 사람인가) . 부인 박기선, 당시 영도경찰서 정보과 형사, 한상철 인터뷰 13:33- 논란을 일으킨 시신 발견 당시의 정황 - 입위 추락 실험 . 류종익(PNS 법과학기술연구소 팀장) 인터뷰 - 링거병 소음 측정 . 박승범(PNS 법과학기술연구소 대표이사), 당시 안양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동생 황인갑 인터뷰 - 링거병 분산 실험 . 류종익 인터뷰 - 박창수의 환자복 . 임형진(정형외과 전문의) 인터뷰 20:08- 국과수의 부검 - 이윤성(박창수 의문사 법의학자문) 인터뷰 - 국과수 기록엔 없거나 입위 추락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미비점 . 임형진, 이윤성 인터뷰 - 경찰 설명을 전제로 한 부검 . 서재관(당시 부검의) 인터뷰 - 도쿄 감찰의무원 가미야마 박사의 소견 . 가미야마 박사(도쿄 감찰의무원) 28:16- 검찰에 의한 박창수 시신 탈취 - 한상철 인터뷰 30:07- 1991.6.30 박창수 장례식 - 사인규명 촉구 시위 30:45- 87년 이후 91년 봄까지의 노동운동의 흐름 - 대기업연대회의 - 홍영표(당시 대기업연대회의 사무처장) 인터뷰 - 당국은 한진중공업을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에서 탈퇴시키려 함 . 아버지 황지익, 동생 황인갑 인터뷰 - 박창수의 죽음과 안기부는 관계가 있나 . 아버지 황지익, 동생 황인갑, 부인 박기선, 한상철 인터뷰, 당시 한진중공업 정보담당 안기부요원 전화인터뷰 . 오순용(당시 안양병원 경비원) 41:13- 우발사 가능성 - 당시 영도경찰서 정보과 형사, 이용범(당시 전노협대외협력 국장) 43:43- 누군가는 알고 있을 그 죽음의 진실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진상규명불능으로 처리된 박창수 사건 . 한상범(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 국정원 자료 속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노동자 의문사의 진실 . 이용범, 박성호(박창수 의문사 조사관) 인터뷰 47:54- 노동자들의 의문사, 그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 김을선(정경식 어머니), 김정자(박창수 어머니) 인터뷰 51:37-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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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9회 | 20030330 | 5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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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MF로 가다> 내용
세계경제 11위를 자랑하던 한국경제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음과 동 시에 경제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지난 50여년간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 로 고도성장실현에 성공,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후 처음으로 저개발국에서 신흥공업국으로 성장하는 기록을 세운 한국경제였건만, 50년 압축성장을 한순간에 무효로 돌려버린 거품의 그늘은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인가? 강경식.김인호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일단락된 경제청문회, 그들이 내렸던 정책적 판단의 문제점과 97년 한국경제가 나 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본다. 00:00- 타이틀 00:11- 프롤로그 02:20- 전CM 06:23- 1997.11.22 김영삼대통령 경제 난국 극복을 위한 특별 담화 - 김석동(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 과장), 임창열(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회고 - 1997.11.19 임창열 경제 부총리 취임 09:20- 1997.11.19 금융 안정 대책 발표 - 김태완(당시 한국 종금 외환딜러), 김석동(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 과장) 회고 13:46- 1997 태국.인도네시아 IMF 구제금융 신청, 홍콩 증시 폭락 - 강경식(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폴 블루스타인(워싱턴 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휴버트 나이스(전 IMF 협상단장), 김인호 (전 경제수석 비서관) 회고 17:22- 1997.11.14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개혁 추진을 위한 종합대책 - 조지프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20:02- 캉드쉬(IMF 총재)와 만나는 강경식(전 경제 부총리) - 휴버트 나이스(전 IMF 협상단장), 폴 블루스타인(워싱턴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임창열(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조지프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회고 23:28- IMF 협상 과정 보고 받는 데이비드 립튼(미 재무부 차관) - 스탠리 피셔(전 IMF 수석 부총재), 폴 블루스타인(워싱턴 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김용태(전 대통령 비서실장), 임창열(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휴버트 나이스(전 IMF 협상단장) 회고 27:09- IMF 자금 지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향서 - 폴 블루스타인(워싱턴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최흥식(전 금융개혁 위원회 전문위원), 휴버트 나이스(전 IMF 협상단장) 회고 29:29- 1997.6.16 금융개혁안 발표 - 강경식(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최흥식(전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회고 30:41- 금융감독의 권한 둘러싸고 금융감독기구간 첨예한 대립 - 김용태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중재(당시 재경위 위원) 회고 33:35- 1997.11.18 국회 본회의장, 무위로 돌아간 금융개혁법안 - 김석동(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 과장), 강경식(전 경제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회고, 김상조(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인터뷰 36:03- 1997.12.3 캉드쉬 IMF 총재, 한국 방문 - 폴 블루스타인(워싱턴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김용태(전 대통령 비서실장) 회고 37:25- 1997.12.3 IMF 구제금융 지원 협상 타결 - 김석동(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 과장), 폴 블루스타인(워싱턴포스트 경제담당 기자), 휴버트 나이스(전 IMF 협상단장) 회고 40:25- 1997.12.19 김대중 대통령 당선, 환란 극복의 중책 맡아 - 김기환(대외경제협력 특별 대사) 회고 41:52- 1997.12.24 IMF 구제금융 조기 지원 합의 - 조지프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인터뷰 43:42- IMF 협상안 체결로 인한 사회적 변화 45:08- 1993.7.2 신경제 5개년 계획 담화문 발표 - 김상조(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조지프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 회고 47:30- 에필로그 48:58- 다음회 예고 49:4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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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8회 | 20030323 | 53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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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 2-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내용
2002년 3월15일, 광화문은 자신들을 북파공작원이라 주장하는 20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삽시간에 난장판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태는 한번 으로 끝나지 않고 9월 29일 영등포로 다시 한번 이어지게 된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가?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건 이후 당시 대통령이었 던 박정희는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복수, 응징하는 성격의 특수부대 설 립을 지시하게 되고, 한국 전쟁 발발 후 설립된 HID가 체계화를 이뤄 설 악개발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취지 하에 설립된 설악 개발단 은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이후 성격이 퇴색된다. 희생과 침묵만을 강요 당했던 북파공작원. 국가는 보상과 명예 회복이라는 약속을 했지만 아직 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들의 불만과 분노는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가 고 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들이었던 그들의 희생은 누구의 책임인가?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2:03- 전CM 06:05- 충청남도 연기군, 유복남(고 진영재 북파공작원 엄마) 인터뷰 - 서정목(북파공작원, HID) 인터뷰 10:37- 후유증으로 정신분열 앓고 있는 임종호(HID, 북파공작원) - 박근동.노세현.윤명렬(UDU, 북파공작원) 증언 15:41- 대한민국 정보기관 변천사 - 북파공작원(HID) 홍보물 - 신상균.김동호.박명호.박세근(UDU, 북파공작원) 증언 20:25- 전 HID 대장.현 정보사 관계자 인터뷰 - 김규철.신상균(북파공작원, HID) 인터뷰 22:53- 2002.11.12 국군정보사령부, 전 북파공작원.유가족들 시위 24:13- 북파 공작원 명령체계, 당시 정보사령관들과 전화인터뷰 시도 26:31- HID 북파공작원유족동지회 - 북파공작원 명단, 구홍회(설악동지회 대외협력국장) 인터뷰 28:30-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 당시 훈련 현장 - 차준호.박명호.신상균(UDU, 북파공작원) 32:52- 경기도 포천군, 정신분열증으로 홀로 사는 한상남(HID 북파공작원) - 오광식(북파공작원 HID) 인터뷰 38:11- 전남 여수시, 잠수병으로 지체장애2급이 된 원학성(UDU, 북파공작원) - 오방규(북파공작원, UDU) 인터뷰 43:07- 2002.10.25 국방부, 전 북파공작원.유가족 시위 45:26- HID 설악동지회 모임, 2002년 7월 12일 국정원 녹취 - 구홍회(설악동지회 대외협력국장), 전영안(UDU 사무총장) 인터뷰 47:13- 2003.2.16 설악동지회 정기총회, 북파공작원 단체 현황 48:06- 이춘홍(설악동지회 회장), 전영안(UDU 사무총장) 인터뷰 49:43- 에필로그 50:46- 다음회 예고 51:29-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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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7회 | 20030309 | 55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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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과 NLL> 내용
2002년 6월 교전 직후 언론과 정치권은 도주하는 북 경비정을 격침시키 지 않았다며, 서해교전을 군의 실패한 작전으로 매도했다. 교전 3일만에 군은 보수 언론들과 정치권의 강경한 여론몰이에 의해 선제공격을 허용하 는 방향으로 교전규칙을 바꾸어버렸다. 동해 바닷길에 이어 육상의 군사 분계선도 열렸지만 서해는 여전히 한반도의 화약고로 남아있다.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과 확전 가능성이 잠재돼있는 곳, 서해상에서의 또다른 희생 을 막기 위해서 NLL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협상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00:00- 타이틀 00:18- 프롤로그 02:30- 전CM 06:33- 고 윤영하 소령(참수리 357호 정장) 생전 모습 - 2002.6.14 평택 제2함대 사령부 07:35- 2002.6.29 2차 서해교전 발생, 7.1 전사 해군 장병 영결식 08:50- 2002.8.21 참수리 357호 인양,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 -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인터뷰 10:20- 긴장감 도는 대연평도, 굴 채취, 안광헌(어민) 인터뷰 12:13- 1999.6.15 1차 서해교전 발생, 2002.7.2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 조성태(1999년 당시 국방부 장관) 발언 13:21- 1953 정전협상, 백선엽(정전협상 당시 유엔군측 대표) 회고 14:53- 미국 일리노이주, 리처드 언더우드(정전협상 당시 통역관) 회고 - 정전협정 첨부지도 17:54- NLL 설정에 관한 국방부의 공식적인 입장 - 하태영(국방부 군비통제관실, 중령) 회고 - 해군본부 작전지시 1235호 첨부지도, 해군작전경과보고서 20:01-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 시타델군사학교 문서보존소 21:04- 미국 버지니아주, 이문항(제임스리, 전 유엔사 특별고문) 회고 - 연합작전지도 - 김현기(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인터뷰 - 납북 어부 귀환, 1957.11.10 해군 신어로저지선 선포 26:19- NLL 관련 공식 발언 없었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사건기록 - 이장희(한국외국어대 국제법 교수) 인터뷰 29:57- 1982.4.30 제3차 유엔 해양법 회의, 1977년 미 국무성 발간 지도 -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인터뷰 32:17- 1973.12.1 북한, 백령도 주변 등 영해 주장 - 1984.9.29~10.4 북한 적십자사 수해물자 인도 - 김현기(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김일상(당시 구축함 아산함 함장), 이장희(한국외국어대 국제법 교수) 인터뷰 37:22- 서해상의 무력충돌에 대한 강경여론을 부추기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 - 1996.7.17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 이양호(1996년 당시 국방부장관) 인터뷰 - 2002.7.7 국방부 서해교전 상황보고, 김동신 국방부장관 사퇴 - 영해 침범에 대한 군의 미온적 대응에 비판하는 일부 언론들 . 강정구(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양문석(언론노조 정책위원) 인터뷰 43:51- 2002.7.3 교전규칙 개정, 2002.7.1 서해교전 전사 해군 장병 영결식 45:14- 1991.12.13 남북 기본합의서 조인 - 이동복(남북고위급회담 대표) 인터뷰 47:58- 1999.7.11 미 항공모함 컨스틸레이션호 부산 입항 48:26- 2003.2.14 금강산 육로관광 시작, 2003.3.1 연평도 꽃게잡이 출어 - 해군 경계근무 돌입 - 이장희(한국외국어대 국제법 교수),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50:31- 에필로그 52:09- 다음회 예고 52:46-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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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6회 | 20030302 | 6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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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화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내용
한국은 일본 침략정책의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배상의 전 과정 에서 한국의 이해는 전혀 대변되지 못했다. 1951.9.8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전쟁 피해국가들을 배제한채 한국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체결되었 다. 결과적으로 단지 지엽적으로만 평화조약일 따름이으며, 강화조약 본 래의 목적인 전쟁처리라는 점에서는 불충분한 조약이었다. 미국은 더 나 아가,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을 압박해 일본과 협정을 맺도록 했다. '억지 화해'를 강요한 것이다. 그것은 태평양은 미 국의 호수가 될 것이라는, 20세기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야망을 확증해 주 는 일련의 상호간, 그리고 다자간 군사조약이었다. 이후 60여 년. 당시의 전쟁 피해자들은 아픔을 함께 나눈 친구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는, 죽음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의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유태인의 말처럼, 희생자가 생존해 있기 때 문이 아니라, 동일한 역사가 미래에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연 된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00:00:00- 타이틀 00:00:26- 전CM 00:05:30- 프롤로그 00:07:03- 태평양 전쟁 발발, 1945.8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1945.8.15 대한민국 해방, 일본 히로히토 천황 항복 방송 00:10:02- 1951.9.8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 와다 하루키(일본 도쿄대), 크리스토퍼 시구르(북가주 일본협회 회장) 회고 00:11:34- 2001.9.8 오페라하우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50주년 기념식 - 레스터 테니(전 미군 포로), 크리스토퍼 김(강제징용소송 담당 변호사), 배리 피셔(강제징용소송 담당변호사) 인터뷰 - 1942.4.10 필리핀 바탄 죽음의 행진 - 정재원.오은섭(강제 징용 피해자) 회고 00:19:05- 2001.9.19 워커 판사의 판결문 - 도나 로라바커.마이크 혼다(미국 연방하원의원), 와다 하루키(일본 동경대) 인터뷰 00:21:18- 1946.5.22 요시다 내각 출범, 1946.11.3 신헌법 공포 - 로버트 피어리(당시 미국 국무부), 클라크 클리포드(트루먼대통령 특별자문위원) 회고 00:25:25- 1947.3.12 트루먼 독트린, 1947.6.5 마샬플랜 - 정현백(성균관대), 존 루카스(역사가) 인터뷰 00:28:02- 1948.6 베를린 봉쇄, 1948.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8.9.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1949.8.29 소련의 핵 실험, 1949.10.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 존 프라이스(캐나다 빅토리아대), 와다 하루키(일본 동경대), 존 다우어(MIT 교수) 인터뷰 00:31:46- 1950 한국전쟁 발발 - 요시오카 요시노리(일본 참의원), 프랭크 기브니(당시 '타임'지 도쿄지국장), 오오모리 유타카(전 '아사히신문' 기자), 요시오카 요시노리(일본 참의원), 신도 에이이치(일본 쯔쿠바대) 인터뷰 00:36:19- 이승만대통령.존 포스터 덜레스(대일강화 전권 대사) 회동 - 정성화(명지대 교수), 로버트 피어리(당시 미국 국무부) 인터뷰 00:37:16- 1951.4.23 덜레스.요시다 회담 - 프랭크 기브니(당시 '타임'지 기자), 로버트 피어리(당시 미국 국무부), 한표욱(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한국대표) 회고 00:41:58- 1951.9.4~9.8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 존 프라이스(캐나다 빅토리아대), 울디스 크루즈(미국 샌프란 시스코대) 인터뷰 00:45:43- 1951.9.7 슈티커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의 비밀편지 - 스티븐 클레먼스(칼럼니스트), 존 프라이스(캐나다 빅토리아대) 인터뷰 00:48:17- 1951.9.8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국립공원, 미일안보조약 체결 - 신도 에이이치(일본 쯔쿠바대), 아키라 이리에(미국 하버드대), 존 프라이스(캐나다 빅토리아대) 인터뷰 00:51:17- 2001.9.11 테러, 2001.10.5 일본 고마키 해상 자위대 인도양 발진 - 유키코 코시로(미국 베이츠대), 아이비 리(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레스터 테니(전 미군 포로) 인터뷰 00:55:11- 정재원(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김순덕(일제 성노예 피해자) 회고 - 스티븐 클레먼스(칼럼니스트), 배리 피셔(징용소송 담당 변호사) 인터뷰 00:58:19- 다음회 예고 00:58:52-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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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5회 | 20030223 | 58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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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 베트콩, 한민통의 진실> 내용
민주화 운동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법 제정이후 많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얼마전에는 김대중 씨를 비롯한 많은 민주인사들을 군사법정에 서게 했던 내란음모사건에 대 한 재심청구가 있었고, 무죄판결을 받은 관련자들은 20여년 만에 명예회 복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발한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에서는 진실을 규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60~70년 대 해외민주운동에 힘썼던 재외인사들 특히, 해외민주화운동의 중심부대 라고도 일컬어졌던 재일동포 단체인 한민통이 그 주인공이다. 78년 '반국 가 단체'라는 대법원 판시를 받은 이래 그 무거운 너울을 쓰고 살아온지 어언 30여년. 정말 이들은 대한민국을 반하는'용공세력'인가, 아니면 불 운한 '애국세력'인가. 조국이 있어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조국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신념의 정체는 무엇인가. '반한 베트콩, 한민통' 그들을 조명해본다. 00:00- 타이틀 00:25- 전CM 04:59- 프롤로그 09:14- 1972.10 유신 선포, 김대중 일본 TBS 방송과의 회견 - 김재화(8대 국회의원, 민단 단장 8회 역임), 배동호(민단의장 역임), 정재준(민단동경본부 단장) -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회고 11:31- 1973.3.22 민주화운동활동가 연수회, 한민통의 3대 기본원칙 -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이용택(전 중앙정보부 수사국장), 이구홍(해외교포문제연구소 소장) 회고 17:11- 1969.8.7 재일거류민단 강화대책회의 - 민단 단장 선거, 이희원 31대 민단 단장 당선 - 김성호(당시 취재 기자), 최학부(71년 단장선거 입후보), 정재준 (당시 민단도쿄 단장),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이용택 (전 중앙정보부 수사국장) 회고 21:27- 1973.8.8 김대중 납치 사건,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결성식 -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회고 - 1976.9.15 김대중 석방 촉구 시위, 김정부(한통련 기획실장) 회고 24:31- 1978년 한민통 제작한 영화 <어머니> - 마키에다 모도후미(당시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의장) 인터뷰 27:13- 1977.8 해외 한국인 민주운동 대표자회의, 고 윤이상 연설 -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회고 29:37- 1977.8.14 민주민족통일 해외한국인 연합(한민련) 결성 - 이종수(광주대 언론정보대학원장),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이재현 (전 한민통 미주본부 의장) 인터뷰 33:05- 1977.5.28 자수간첩 윤효동 기자회견 - 곽동의(한통련 의장), 김정사(유학생 간첩사건으로 구속) 회고 36:13- 한민통에 회비 납부한 방호환(전 한민통 중앙위원) - 최학부(전 민단 중앙본부 조직국장) 회고 39:32- 한민통 오사카 본부, 한민통의 자금 출처 - 김정부(한통련 기획실장), 김은택(한통련 부의장), 방호환(전 한민통 중앙위원), 정재준(전 민단 도쿄 단장), 이종수(광주대 언론정보대학원장) 인터뷰 42:48- 1978년 한민통,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 단체로 판시 -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김성호(전 한민통 선전국장) 인터뷰 46:46- 배정희(한민통 상임고문 배동호 딸) 회고, 고 배동호 영결식 - 이기욱(변호사) 인터뷰, 곽동의(전 한국청년동맹 위원장) 회고 50:54- 김정부(한통련 기획실장), 김창오(한통련 오사카 사무국장) 인터뷰 - 나가누마 세츠오(전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인터뷰 53:41- 2003.1.24 도쿄, 효순.미선 촛불 추모행사 54:42- 에필로그 55:47- 다음주 예고 56:28-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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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3, 4회 | 20030216 | 59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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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계획, 10.27 법난의 진실> 내용
10. 27 법난의 진짜 동기는 무엇이며 누구에 의해서 기획되고 지시되었 는지, 한국현대사 초유의 종교유린사태의 묻혀진 진실을 당시 법난의 한 복판에 섰던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증언을 통해 23년 만에 새롭게 밝혀 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34- 전CM 06:07- 법난사건 과정, 당시 법난사건 연루자 증언 - 계엄사 수사 발표(1980.10.28) . 비리.범법 승려 등 46명 연행, 불교 정화 착수 - 박맹수(당시 수색군 장교) 회고, 당시 기록한 수색일지 - 양근하(당시 보안사 기획조정처, 소령) 회고 - 전창열(당시 육군 법무관실 송무과장, 중령) 인터뷰 - 조계종 정화중흥회의 출범(1980.11.3) . 계엄사 중간수사 발표(1980.11.14) 22:07- 전두환 11대 대통령 취임(1980.9.1), 대대적인 사회 정화 바람 - 6대 윤고암 종정 직무대행 취임(1978.11.11) . 송월주 총무원장 선출(1980.4.26) - 왜곡된 법난사건 수사결과, 고문 당한 스님들 . 전언통신문(1980.10.31) . 한영수(당시 문공부 종무관) 회고 37:11- 88년 5공 청문회, 10.27 법난 진상규명위원회 출범 - 강영훈 총리 사과 담화 발표(1988.12.30) - 10.27 법난 경위 국방부 설명회(1989.1.30) 45:53- 전두환 대통령 불교정화위원 접견(1980.12.10) - 전두환 전 대통령 10.27 법난관련 사과(1988.12.31) -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행(1988.11.23) 55:43- 에필로그 56:59- 다음주 예고 57:37- 후CM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