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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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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8회 | 20000820 | 48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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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시대- 건전가요와 금지곡> 내용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면서 대중가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 이 이루어진다. 이른바 '노래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국민의 의식 개혁과 정신개혁'이라는 정책목표를 지향하며 건전가요와 금지곡으로 나 타난 유신 이후 70년대 권위주의 정부의 대중조작적 문화정책을 해부해 본다. 00:00- 타이틀 01:08- 전CM 04:41- 한국 포크의 출발을 알렸던 한대수의 음악 - 청년문화의 리더 김민기, 양희은, 이장희, 이정선, 신중현 10:53- 포크음악의 인기로 인한 통기타의 열기 17:18- 음반업계 정화 목적으로 설립된 예술문화윤리위원회 - 1972년 유신을 전후로 전국의 초등학교에 불려졌던 노래(유신을 구국의 결단으로, 박정희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선전하고 찬양한 노래) 21:44- 청와대에서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부탁 거절한 신중현 23:19- 건전가요 개창운동 - 79년 애국가요로 선정된 '새마을노래', '나의 조국'은 왜색조의 노래 33:14- 국민교육헌장은 일본의 '교육칙어' 본딴 '국민교육헌장의 노래' 36:22- 1975년 6월 공연정화대책을 발표해 3차에 걸쳐 222곡의 금지곡 발표 46:13- 다음회 예고 46:33-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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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7회 | 20000806 | 60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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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커넥션- 쿠데타 정권과 친한파> 내용
쿠데타로 집권한 한국의 역대 반공 군사정권과 일본의 친한파 인사들과 의 정치, 경제적인 검은 유착 관계를 관련자들과 연구자들의 증언을 통해 집중 해부해 본다. 00:00:00- 타이틀 00:00:13- 프롤로그 00:02:10- 전CM 00:06:13- 북한 남침설로 국내 군사정권 반대시위 진압 - 1980년 5월 일본으로부터 두 건의 북한 남침설이 제보, 이것을 계기로 비상계엄령 확대 . 박선원(연세대 국제학 연구소 박사), 손장래(80년 당시 주미공 사) 인터뷰 - 제보한적 없다는 일본측의 입장 00:15:21- 북한 남침설 조작 의혹 - 필요에 의해 조작된 북한 남침설 - 일본의 밀사 세지마 류조, 40억불 경제협력과 올림픽, 엑스포 유치를 제안 00:37:04- 박정희의 장기 집권 뒤에도 자리잡고 있었던 일본 커넥션 - 일본은 지하철 차량을 한국 정부에 납품하면서 가격을 두 배 이상 높게 책정 . 오치아이 히로부미(아사히 신문 편집국장), 히시키 카즈요시(당 시 아사히 신문 서울 특파원) 인터뷰 - 일본 커넥션의 상대역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 - 박정권에 대한 특혜시비 . 이카리 아키라(당시 아시히 신문 서울지국장) 인터뷰 00:47:21- 일본 커넥션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과 일본의 의도 - 오노다 아키히로(당시 공동통신 서울특파원), 박선원(연세대 국 제학 연구소 박사), 다카시마 노부요시(오끼나와 유구대학 교수 ), 이재오(국회의원), 김영호(산업자원부 장관), 김도형(산업연 구원 연구위원), 김중배(언론개혁 시민연대 상임대표), 강창일 (배재대학교 세계지역학부 교수) 인터뷰 00:56:26- 에필로그 00:57:47- 다음회 예고 00:58:2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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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6회 | 20000730 | 48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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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의 포로, 실종자들> 내용
월남전 당시 실종자로 처리되었던 이들이 혹독한 포로생활을 견디고 살 아돌아왔다. 하지만 국방부의 공식적 입장은 포로가 없다는 것과 실종자 는 8명이라는 것이다. 월남전 당시 전쟁포로에 관해 기록된 미국 CIA문서 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최소 9건의 문서에서 16명 이상의 한국군 포로와 실종자들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으며 어디에 있을까? 월남의 한국군 부대 근처에서 다수의 삐라를 발견했던 당시 정보 장교의 증언과 남파귀순간첩의 육성을 통해 북에 있을 월남전 실종자들에 대해 알아본다. 전쟁이 끝난지 30년, 우리 정부는 아직도 포로·실종자 문제를 그냥 방 치해두고 있다. 미국은 93년 전쟁포로 및 실종자 담당국인 DPMO 라는 기 관을 만들어 유가족과 국방부가 꾸준히 전쟁포로와 실종자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확인된 8명의 실종자 가족조차 방치한 채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00:00- 타이틀 01:15- 전CM 04:49- 월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실종처리자들 - 68년 1월 월남의 구정공세 당시 포로로 잡혔던 박정환 대위와 72년 4월 월남전에서 전사,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던 유종철 일병 살아 돌아옴 10:58- 한국군 포로와 실종자들의 흔적 - 미국 CIA 문서 중 최소 9건의 문서에서 16명 이상의 한국군 포 로와 실종자들의 열쇠를 풀수있는 실마리 발견 24:58- 북으로 간 실종자들 - 월남의 한국군 부대 근처에서 다수의 삐라를 발견했던 당시 정보장교의 증언 33:57- 한국인 포로가 20명으로 언급되어 있는 69년에 나온 랜드보고서 34:56- 전쟁 포로와 실종자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미국 - 미국은 93년 DPMO라는 기관을 만들어 유가족과 국방부가 꾸준히 전쟁 포로와 실종자 찾아 39:09- 실종자 김인수 상병, 정준택 하사의 가족들 44:13- 에필로그 45:44- 다음회 예고 46:24-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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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5회 | 20000723 | 50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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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사업의 희생자들- 군대가서 죽은 아들아> 내용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실시한 대학생 강제징집은 이른바 빨간 민둥산을 푸르게 가꾼다는 취지의 녹화사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 정의를 외치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던 젊은이들에게 평생동안 씻을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가슴 한구석에 남겨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여섯 명에 이르는 군 의문사가 나왔다. 하지만 '자살 '이라는 이름으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들 은 절대 자살일 리 없다는 강한 이의를 제기하는데…. 살아있는 녹화사업 대상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서 녹화사업으로 인한 의문의 죽음들의 진상은 무엇인지 은폐된 사실의 증언을 들어보고, 죽음 에까지 이르게 한 녹화사업의 실체를 살펴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52- 전CM 05:24- 강제징집 희생자 합동 추모제 - 박정관 인터뷰 - 사망자, 가족들 증언 11:36- 녹화사업의 진위 - 강제징집문제 공동조사 보고서 - 유시민 인터뷰 14:13- 진혼비의 의의 - 이범재 인터뷰 15:31- 학생운동자들의 강제징집 - 강제징집자 총회 - 결격사유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입대조치 - 이윤성의 마지막 편지, 소대장 면담기록 - 진술조서의 조작, 혐의의 의혹 . 김재철, 이명률, 당시 헌병대 조사관, 이동수(당시 소대장), 김승진, 이정빈 교수 인터뷰 . 월북기도 혐의 조작 . 당시 기록의 부실함 29:01- 보안사의 의식화 교육, 녹화사업 - 석락희(녹화사업 담당장교), 현정길 인터뷰 - 고문을 통한 교육 . 현정길, 김인서 인터뷰 - 녹화사업, 관제 프락치 활동의 강요 . 녹화사업 과정 . 양창욱, 한상훈, 헌병대 조사관, 유시민 인터뷰 . 한희철에 대한 증언서: 전기고문 - 최온순의 타살 판정 . 최온순의 타살 판정: 항의후 사인 변경 . 유시민, 이상신 교수 인터뷰 41:37- 계속되는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 - 87년 6월 항쟁 - 국방부의 녹화사업 개요 시인(대상자 429명 명단 공개) - 이범재, 김혜숙, 이명률 인터뷰 47:34- 다음회 예고 48:1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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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4회 | 20000716 | 56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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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8월 8일 동경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야당지도자이자 대통령 후보 김대중씨 납치 미스터리 사건의 진실을 국내 및 해외취재 통해 추적하였 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동경의 한 호텔에서 야당지도자이자 대통령 후 보였던 김대중씨가 납치되었다. 당시 일본 경시청의 수사가 이루어지고 한국에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납치 가담자들이 범행일체를 부인하므로 본 건 내사를 중지한다'는 내용으로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는 요코하마 총영사관의 소유인 납치 차량, 중정 요 원인 김동운의 지문, 그리고 호텔 방에 남겨진 륙색과 로프 등 명백한 증 거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75년에는 일본 덴 히데오 의원에게 납치 가담자 의 명단이 적힌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는 그 명단을 일본 의회에 공개하 고 일본 정부를 추궁했으나, 일본정부는 끝내 그 명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스터리만을 남긴 채 이 사건은 종결되었으며 27년이 지난 지금도 미제 로 남아있다. 과연 납치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살해가 목적인가, 단순납치인가? 누가 그를 죽음에서 구해주었는가? 박정희의 특명을 받아 사건의 실질적인 수 사를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당시 수사국장 이용택의 증언, 일본 납치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의장으로 20년간 조사해 온 이또오 나리히꼬 교수, 수 년간 JCIA와 KCIA와의 관계를 추적해 온 우에다 의원의 증언을 들어본다. 또한 주한 미대사관과 워싱턴 미국무부 사이에 오가던 비밀전문과 당시 미 CIA 서울지부장으로 김대중을 구하고자 했던 그레그, 백악관 출입기자 로 수년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사건을 취재해 온 문명자 기자 등을 중 심으로 그동안 은폐되었던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2:38- 전CM 06:42- 동경의 그랜드팔레스 호텔에서 김대중 납치(자료화면) - 김군부, 김경인 인터뷰 10:42- 박정희의 10월 유신 11:57- 김대중의 유신반대운동, 두차례의 위협경고 - 이용택(당시 수사국장), 그레그, 문명자, 조활준, 김군부 하라다 맨션의 하라다 사장 인터뷰 19:26- 일본 경시청의 사전교류, 개입 의혹 - 무라카미(우쓰노미야 의원 비서) 인터뷰 - 사건 발생 2시간 후에야 일본의 경시청의 출동 23:09- 납치범들의 목적은 납치인가 암살인가? -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대형 배낭과 로프에서 발견되는 암살의 의혹 - 한승헌, 김경인, 이용택 인터뷰 24:52- 한국정보기관과 JCIA의 공작 혐의 - 주일 한국 대사관의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음 - 공범: 사설탐정사무소의 직원들(일본 CIA요원들이 급조한 사무실) - 의뢰자는 한국대사관의 '김동운' - 김대중의 자작극 의혹 31:27- 납치 정황 - 조시환, 이용택 인터뷰 - 미국의 성명발표와 김대중 지지 . 이또오 나리히꼬 교수 인터뷰 - 김대중의 귀환 46:38- 박정희의 개입의혹, 이후락의 정부 불개입 주장 - 한승헌 인터뷰 - 사건의 무마, 일본과 한국의 검은 유착 . 문명자, 나리히꼬 교수 인터뷰 51:19- 미제사건으로 남은 '김대중 납치사건' 52:52- 다음회 예고 53:32-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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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3회 | 20000709 | 56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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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도 한반도 전쟁 위기> 내용
분단 50년, 과연 한반도에서 전쟁위기는 사라졌는가! 91년 남북기본합의 서 이후 불거진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NPT 탈퇴 선언!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생존의 카드를 놓지 않으려는 북한은 이로부터 심각 한 갈등국면에 들어선다. 미국은 한반도 전쟁에 대비한 구체적이고 치밀 한 계획을 세우고,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준비함으로 써 한반도는 6·25 이후 최대의 전운이 감돌게 된다. 한국 정부는 북미 협상에서의 소외와 김영삼 정부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대북 정책에 일대 혼란을 겪는다. 94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는 카터의 방북과 제네바협의로 평화적인 해결 국면을 맞이했다. 과연 94년 전쟁위기는 있었는가?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가? 전쟁 위기의 실체와 진실은 무엇인가! 6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정부 고위관계자 들의 증언을 통해 이를 실증적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북한 핵, 미사일 문 제와 미국의 NMD 계획 등으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위기를 분단 55년만 에 극적으로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 위기 구조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2:19- 전CM 06:22- 1994년 한반도의 전쟁위기와 대책 - 정흥보, 이인용, 최지호, 당시 통일부 차관 송영대 인터뷰 10:00- 미국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입장들 - 박관용 전 비서실장, 제임스 레이니, 정종욱, 제임스 릴리 한승주 인터뷰 - 민간인의 철수는 준군사조치 13:58- 북한의 핵개발 - 브루스 커밍스 교수, 지만원, 셀리그 해리슨 - IAEA의 북한 핵사찰 - 북한의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 선언 - 북미회담 공동 성명의 성립 . 리언 시걸 교수, 윤덕민, 로버트 갈루치, 케네스 퀴노네스 인터뷰 27:47-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불신과 갈등 - 존 맥케인, 제임스 릴리, 한완상, 데이빗 브라운, 이삼성 교수 인터뷰 - 대북한 강경정책으로의 변환 . 한완상, 한승주, 도널드 그레그 인터뷰 . 팀스피리트 훈련의 재개 - 북한의 대응과 전쟁위기의식 증폭 . 송영대, 이동복, 로버트 갈루치 인터뷰 - 카터와 김일성의 회담, 위기의 해소 . 제임스 레이니, 리영희, 리언 시걸 - 걸프전과 한반도의 운명 . 리영희, 리언 시걸 교수, 제임스 레이니, 도널드 그레그 인터뷰 . KDI보고서: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재평가 - 북미간 대결과 위기의 되풀이 . 북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 미국의 NMD(국가 미사일 방어 체제)사업 계획 . 미국의 패권주의 50:50- 남과 북, 공통의 과제 - 브루스 커밍스 교수 인터뷰 53:36- 다음회 예고 54:15-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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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2회 | 20000702 | 57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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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급 비밀! 미국의 세균전> 내용
1925년 제네바 협정은 화학전과 세균전을 반인도적 전쟁 범죄로 규정, 이들 무기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정작 협정을 주도한 미국은 이 협정을 비 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 상황에 의해 미국 의 세균전 의혹은 보이지 않는 역사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세균전 의혹의 진실은 무엇인가?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의심을 증 폭시켜주는 기밀 해제된 미국 문서들을 중심으로, 당시 전황과 미국내 및 국제 정세 등 여러 변수들을 다각적으로 접근, 세균전 의혹의 실체에 접 근한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 미국의 세균전: 한국전쟁동안 제기되었던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의혹과 진실 01:13- 전CM 05:15- 1951년 겨울, 미군 비행기 출연 후 곤충과 전염병 출연 - 북한과 중국의 미국의 세균전 주장 . 미군이 투하한 조개에서 콜레라 균이 발견됨 . 1952년 3월 페스트 떠돔 감염된 쥐와 벼룩이 발견 됨 . 북한이 제공한 자료화면 . 스테픈 엔티콧 교수, 송상용 교수 인터뷰 09:47- 1952년 세계평화회의에서 국제과학 조사단 파견 - 티엔 웨이 우 교수, 쉘던 H. 해리스 교수 인터뷰 - 미국의 반박 12:04- 미국과 일본의 세균전 자료거래 14:15- 미국의 세균전 연구 - 곤도 쇼지, 에드워드 해거만 교수 인터뷰 - 스티븐슨위원회, 크리시 보고서 - 스티븐슨 보고서: 보복정책을 넘어선 공격적 세균무기에 대한 허용 주장 17:35-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른 미국의 강도높은 공격계획 - 셔먼 W.프랫, 백선엽, 강정구 교수, 이종원 교수 인터뷰 - 맥아더 장군의 원자폭탄 사용과 방사능 오염대 계획 . 맥아더 장군의 원자폭탄 사용 제안,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 철회 . 방사능 폐기물 사용계획 등장 - 미국의 자국내 세균실험 . 에드워드 네빈 3세 인터뷰 - 미국의 세균전 결정과 미국내의 반발 . 강정구교수, 마이틀 E.하스, 에릭 올슨 인터뷰 - 이륙작전을 통한 세균폭탄의 투하, 보급로 차단 . 스테븐 엔디콧 교수, 김인수, 김동기, 강정구 교수 인터뷰 . 이륙작전의 증거, 미 공군 포로들의 진술 . 미국이 주장하는 전단폭탄이 세균폭탄임(북한과 중국의 주장) 43:12- 북한의 세균전 주장 조작 의혹 제기 - 제널드 맥클록린, 밀턴 린텐버그, 캐더린 웨더스비, 에드워드 해거만 인터뷰 - 소련이 제공한 세균의 자료와 사형수를 통하여 북한이 조작한 증거물임을 주장 - 소련의 12개의 문서에 대한 입장들(진위여부에 대한 논의) 47:22- 세균전에 대한 강력한 주장 -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W.파월, 스탠리I.커틀러 교수 인터뷰 - '중국월보'에서 보고 수집한 증거들을 기사화하여 제공 52:01- 덮어진 세균전, 정당화 될수 없는 전쟁범죄 54:01- 다음회 예고 54:40-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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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회 | 20000625 | 54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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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사단의 사라진 작전 명령서> 내용
노근리 사건 이후로 사회의 주요 관심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집단적인 양민학살. 그러나 양민학살은 전쟁기간에만 그리고 인민군과 미군 측에 의해서만 자행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군과 경찰 측에 의해서도 자행되 었던 비극적 참상! 6.25 전쟁 후 반세기를 맞을 동안 우리에게는 집단 학살에 대한 속시원 한 진실 찾기와 반성이 없었다. 이제 당시 군인이나 경찰에 의한 양민학 살의 기록을 찾고 공개할 때가 되었다. 6.25 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그 역사의 현장에 묻혀있던 진실을 찾아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이데올로 기의 대립이 가져온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되짚어 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1:52- 전CM 05:25- 경남 산청군 외공리, 유해 발굴 현장 - 한국 전쟁 당시 1951년 2월 20일 경남 산청군 외공리에서 집단 학살당한 신원 미상의 유해 발굴 현장 - 주민들, 고경혁(경상대 의대 교수) 인터뷰 09:27- 11사단의 양민학살 - 거창양민학살사건 현장 . 강영훈(당시 고등 군법회의 재판장) 인터뷰 . 토벌작전 전과 보고, 11사단 부대 배치도 - 전북 남원군 강석면 대강리에서의 학살 . 일본도 효수 현장(생전에 증언했던 김점동 옹의 동생 김남규 인터뷰) - 전남 함평군 월야면 장교리, 남산뫼에서의 학살 - 전남 함평군 해보면 모평에서의 학살 . 당시 지서 관계자들의 증언 서명 -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심원면 만돌리에서의 학살 . 이기화(당시 중대장 수행) 인터뷰 - 6.25 양민학살 진상 실태 조사 보고서 . 최강선('93 전북의회 조사 특위 위원장) 인터뷰 24:03- 한국 전쟁 당시의 상황 - 채명신(참전 예비역 장군) 인터뷰 - 11사단의 창설과 작전 26:33- 산청, 함양에서의 양민 학살 - 산청 함양 합동 위령제 - 양민학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당시의 학살사건 . 백선엽(6.25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35:13- 주민학살은 전쟁기에 어쩔 수 없는 피해였나 - 김일호(함평 학살 사건 당시 중대장 연락병), 최시문(당시 휴천면 지서장), 이종태(산청 함양, 서창 사건 당시 9연대 1대대장), 박경원(산청 함양, 거창 사건당시 11사단 참모장) 인터뷰 - 사라진 작전명령서 . 정석균 연구위원 인터뷰 . 2월달 작전일지 내용이 누락된 당시의 작전일지 42:41- 양민학살에 대한 UN의 입장 - 조시현(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인터뷰 - 양민학살은 누구의 책임인가 . 미8군 사령관 벤 플리트의 작전 노트, 미8군 사령부 보고서 . 브루스커밍스(시카고 대학 교수),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47:04- 학살 유가족들의 생활과 훼손된 거창사건 위령비 51:35- 다음회 예고 52:02-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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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9, 13회 | 19991226 | 62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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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이수근> 내용
분단으로 마감되는 한반도의 20세기.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이 겪 어야 했던 비극은 간첩과 간첩 아닌자, 공산주의자와 민주주의자, 그들을 가려내기 위한 법을 만들고, 강화하고, 집행하는 역사를 되풀이한 것일지 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무고한, 혹은 비상식적인 희생이 있었다는 것. MBC 특별기획「이제는 말 할 수 있다」최종편 '간첩? 이수근'은 사상을 재단당한 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시대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00:00:00- 타이틀 00:00:14- 프롤로그 - 이수근의 귀순 - 북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위장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이수근 00:02:40- 전CM 00:06:13-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 00:10:18- 의혹 I - 이수근은 자신이 간첩임을 인정했나 - 고중렬(당시 서울구치소 교도관)과 서대문 형무소 방문 - 이수근의 법정진술 육성자료 - 정상학(당시 주심판사), 배경옥(이수근의 처조카), 담당 검사 인터뷰 00:15:39- 의혹 II - 이수근은 왜, 항소를 포기했나 - 고중렬, 배경옥, 인터뷰 00:18:37- 의혹 III - 탈출직전 김형욱에게 왜, 편지를 보냈나 - 김세준(이수근 조카), 이대용(당시 중정 사이공 공사), 인터뷰를 거부한 당시 담당수사관들 - 재판기록물에 증거로 제출된 암호문 . 이수근 사건 판결 원본과 중정 수사기록 비교 . 배경옥 인터뷰 - 월북 경로에 대한 의문점 . 배경옥, 홍필용(당시 중정부장 특별 보좌관), 정사학 인터뷰 - 이수근의 귀순은 지령을 받은 위장귀순이었나 . 당시 중정감찰실장, 제임스 리(당시 유엔군사정전위 자료편찬 위원), 홍필용(귀순 당시 중장국장), 이수근 사건 담당 검사, 이종석 인터뷰, 북한 사회안전부 출신 고급 간부들의 증언 - 이수근은 왜 귀순하게 되었나 . 이종석 인터뷰 - 귀순 후 이수근의 생활 . 김세준, 당시 중정감찰실장, 홍필용, 안남규(당시 이수근 수기 제작) 인터뷰 . 수기 '장막을 헤치고'를 계기로 진정한 자유를 찾아 제3국으로 떠나고자 함 . 이수근 최후 진술 00:57:57- 변하지 않은 판문점 풍경 01:00:07- 후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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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9, 12회 | 19991219 | 51분 | 상세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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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특수부대> 내용
24명의 무장공비 출현. 71년 8월, 서울은 한바탕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 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공비가 아닌 군특수범으로 밝혀지는데…. 68년, 김신조 부대의 청와대 습격 이후, 분노한 박정희는 그 보복 조치로 실미 도 부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지옥훈련을 방불케하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실제로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 최정예 부대였다. 그들이 굳이 죽음을 자청하고 청와대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는 무엇인가. 28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말할 수 있는 시대의 비극을 이 제 말한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 장지량(부대 창설 당시 공군참모총장), 김두만(사고 당시 공군참모총장), 이준영(실미도 특수부대 기간병) 이야기 - 71년 8월 실미도 북파 특공대 난동 사건 03:06- 전CM 06:38- 실미도 특수부대 창설 배경 - 장지량 인터뷰 08:46- 실미도 특수부대 - 김두만, 장지량 인터뷰 10:49- 생존 기간병들에게서 듣는 실미도 특수부대 I - 생존 기간병들 28년 만에 실미도 방문 - 초기 3개월의 훈련과 생활 - 황석종, 김태수, 한상구, 김방일(소대장), 김이태(소대장), 김정현 - 무의도 주민들이 말하는 실미도 특수부대 21:13- 생존 기간병들에게서 듣는 실미도 특수부대 II - 3개월 이후에 드러난 갈등, 문제점 - 무의초등학교 인질사건 26:28- 변화하는 실미도 밖의 상황 -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 인터뷰 28:59- 생존 기간병들에게서 듣는 실미도 특수부대 III - 훈련병들의 탈주 32:09- 탈주 경로 - 사건 목격자, 승객, 버스 운전사, 기동타격대원 인터뷰 38:07- 실미도 북파 특공대 난동 사건의 의문점 - 그들은 왜 무리지어 청와대로 향했나 . 장지량, 백동호(소설 '실미도' 저자) 인터뷰 - 실미도의 난동을 정말 몰랐나 . 이준영(사고당일 공군정보부대 통신병), 김두만 인터뷰 - 사건 보도의 혼선, 은폐 의혹 . 강근호, 김한수(사건당시 국회의원) 인터뷰 42:11- 실미도 사건의 종결, 그리고 그 후 - 황석종, 김방일, 김이태, 백동호, 이종석 인터뷰 48:22- 다음회 예고 49:07- 후CM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