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상세내용
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8회 | 20020303 | 57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천황을 살려라, 도쿄 전범재판의 흑막> 내용
종전 직후 세계 여론은 15년에 걸친 기나긴 살육의 전쟁을 이끌어온 일 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응징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시아 전 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 걸쳐 49개 연합국이 참전해 무려 5천여만명의 사 상자를 낸 일본의 전쟁범죄를 평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대에 올린 극 동국제군사재판, 그러나 이 재판은 그 엄청난 전쟁범죄의 지극히 일부만 을 다루고 있었다. 재판은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전쟁지도자 25인을 기소하고 전원 유죄 를 선고했지만 일본의 최고 통수권자로 전쟁을 이끌어 갔던 천황의 전쟁 책임은 철저히 은폐되었고, 나치가 저지른 아우슈비츠의 생체실험에 비견 될 만한 731부대의 만행을 비롯해 아시아의 점령지에서 벌어진 무차별한 민간인 학살과 위안부 동원은 물론이고 식민통치를 통한 수탈 및 강제동 원 등은 완전히 제외시켰던 것이다. 세계 여론을 배반하고 천황을 무대 뒷편으로 도피시킨 이 엄청난 음모의 주역은 누구인가? 수많은 의혹으로 점철된 도쿄전범재판에 흑막에 대해 관련 증인들의 증언과 새롭게 발굴된 문서를 토대로 그 진실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07- 전CM 04:10- 천황과 전쟁의 책임 - 유아사 켄(생체실험 의사), 시노즈카 요시오(731부대원), 유종근(한국인 점범, 종신형 선고), 이학래(사형선고), 키오시마(대만인 전범) 회고 06:26- 전쟁의 종식과 전범의 처단 09:36- 맥아더의 천황 지지 - 허버트 빅스(역사학자), 아까자와 시로(역사학자), 존 다우어(역사학자), 요시다 유타카(역사학자) 인터뷰 16:06- 전범의 재판과 처형 - 오행석(처형목격자), 김완근(10년 징역형), 이학래(사형선고) 회고 20:31- 일본의 가혹한 포로정책, 떠넘겨진 죄 - 김완근(10년 징역형), 유종근(종신형) 회고 - 사라진 아시아의 인권 27:03- 천황, 맥아더의 성공적 점령통치 마지막 변수 - 로버트 다너하이(당시 검사) 회고 - 야까자와 시로(역사학자), 존 다우어(역사학자) 인터뷰 37:15- 천황 사면에 대한 연합국의 반발 - 로버트 다너하이(당시 검사) 회고 - 전쟁의 모든 책임은 '도조 히데끼(일본 최고의 전쟁 지도자)'에게 돌아감 42:47- 한국인 전범들의 억울함 - 선우종원(당시 검사), 김완근(10년 징역형), 이학래(사형선고), 다나까 이찌군(스님) 회고 - 전범재판에서 연합국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간주해 처벌했음 - 조선인 포로 조문상 - 일본 전범들의 마지막 판결 . 28명만이 처벌받고 나머지 일본인 전범들은 모두 석방되었음 52:59- 다음회 예고 53:34-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7회 | 20020224 | 57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북파공작원,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 내용
50년대 초부터 70년대 이후까지 국가에 의해 북한에 보내졌던 공작원들, 국가는 그들에게 약속한 대가는 고사하고, 평생 감시와 해외 출국 금지 등의 제약을 가했다. 그 결과 그들은 가정파탄, 정신 질환자로 살아야만 했다. 전 북파공작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그들의 삶을 조명해 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2:33- 전CM 05:06- 2002.2.8 국방부앞, 북파공작원 송의웅 어머니 강덕행 시위 06:31- 60년대 훈련 장소였던 설악산 지옥의 훈련 캠프 - 북파 공작원이었던 김영대.김창렬.소재호.최형관.김성호.채철석. 김기영.박부서 등 증언 09:29- 당시 물색관 인터뷰 11:23- 1968.1.21 김신조 침투 사건 - 장지량(당시 공군참모총장) 인터뷰 12:35- 김영대.김성호.소재호(북파공작원들) 인터뷰 17:13- 북파공작 동지회 중앙본부 19:33- 당시 UDU 요원들의 백령도 거점 - 김강룡.이화식(UDU, 북파공작원) 인터뷰 21:30- 1971.8.23 실미도 사건, 당시 공군참모총장 김두만 인터뷰 22:16- 북파공작원들의 고달픈 삶 - 관악구 신림동(난곡) 이재용(북파공작원) - 물색관.박상호.소재호.박춘목.김성호(북파공작원) 인터뷰 - 충남 당진 폐가에서 혼자 살아가는 김수찬(북파공작원) - 육군본부 정보국 조직표, 종결공작원 명부 - 육군첩보부대(HID) 본부 정릉 청수장 - 여성 북파 공작원이있던 김병직.김정애(북파공작원) - 총상입어 일반장애 4급 판정받은 김기영(북파공작원) - 백령도 가묘, 박부서(북파공작원) 인터뷰 39:06- 북파공작원의 전사 및 실종자 수, CIA 비밀 문서 - 전사 및 실종자 수 - 재미 K.L.O 8240 유격대 총연합회 - 마이클 하스(첩보원 연구가).조지 에치슨(CIA 훈련교관) 인터뷰 - 전사 및 실종자 수 - 재미 K.L.O 8240 유격대 총연합회 44:32- 대한민국 대북참전연대, 인우보증서 46:46- 여성 북파공작원 선발에 개입한 프란체스카 여사 48:05- 북파된 실종자 찾는 사연, 이재용.김영대(북파공작원) 인터뷰 49:52- 김종복(북파공작원)의 국군 수도통합병원 진단서 50:47- 생사를 모르는 북파공작원 가족들 52:21- 에필로그 54:19-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6회 | 20020217 | 56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00:00- 타이틀
00:15- 프롤로그 04:31-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1986.10) - 건대 사태 가담자 박희승, 이숙영, 김종수, 송록희, 정달현, 최동근, 박종주, 홍은미, 정현곤(농성학생대표), 김신(애학투련 의장) 회고 - 최환(당시 서울지검 공안 2부장), 정청래(당시 건대신문사 기자), 이장훈(당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김용갑(당시 청와대 민정 수석비서관) 회고 13:22- 여론의 시각 - 공산혁명분자 건국대 점거 난동 사건이라고 보도됨 17:15- 휘말린 용공 시비 - 이장훈(당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회고 22:24- 치안당국의 태도 - 최상엽(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 인터뷰 28:25- 학생을 바라보는 정권의 시각 - 1985.8.12 <학원안정법>시안 확정 발표 - 김형오(당시 대통령 비서실 정무 1과장), 이학봉(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인터뷰 30:41- 정부와 학생의 분란 - 정대화(당시 구학련 사건으로 구속), 김용갑(당시 청와대 민정 수석비서관), 우상수(서울대 84학번), 김선태(당시 ML당 사건으로 구속) 회고 37:35- 옥상위의 외침 - 정청래(당시 건대신문사 기자) 회고 40:03- 갑작스런 북한의 수공위협설 - 금강산댐 건설 규탄대회 - 이석현(당시 민추협 기획위원), 김종운(농성학생 아버지) 인터뷰 41:59- 86. 10월의 공안의 사건들, 우연인가? - 김선태(당시 ML당 사건으로 구속), 김윤환(당시 청와대 정무 제1 수석 비서관) 회고 44:21- 정권과 치안당국의 합작, 진압 작전 50:05- 학생과 정부의 상반됐던 애국 이데올로기 - 최환(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장) 인터뷰 53:03- 다음회 예고 56:03- 클로징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5회 | 20020203 | 57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내용
1930년대 만주지역에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의 독립군이 널리 알려져 있었 다. 하루 저녁에도 몇 백 리를 간다는 '전설의 김일성 장군'은 당시 만주 의 주민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후 1945년 10월 14일 평양환영대회에 소련 군정과 함께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 오랜 항일투쟁을 해온 전설적 장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모습에 사 람들은 김일성이 가짜라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김일성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오랜 기간동안 북 한을 통치하며 자신의 항일경력을 부풀려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제작진은 김일성의 항일운동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현지취재를 통해 방송 사상 최초로 중요 시기별로 김일성의 유격활동 흔적을 확인할 수 있 었다. 또한 김일성이 다녔다는 길림 육문중학을 현지 취재하였다. 송화강 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서 김일성은 과연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가?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2:21- 전CM 04:39- 김일성의 등장 - 김유길(광복군), 박재창(조만식 비서), 김우전(전 광복군 동지회 회장), 강순명(보천보 사건 당시 옆 마을 거주자), 박창욱 명예교수(연변대 역사학과), 선우진(김구 비서) 회고 -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와다 하루끼(동경대 명예교수),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한국현대사), 허동찬(북한학 학자) 인터뷰 09:00- 보천보 전투 - 허동찬 교수(북한학 학자), 강순명(보천보사건 당시 옆마을 거주자) 인터뷰 12:25- 김일성의 진위 논의 - <삼천리>의 김일성 특집기사 - 김일성 가짜설: <경성일보>의 김일성 사망보도, 일본 외무성 동아국 자료(1938년) - 박갑동(전 남로당 총책), 이승환(민화협 사무총장), 와다 하루끼(동경대 명예교수) 인터뷰 - 혜산사건 판결문 - 일치설 . 혜산사건 판결문 . 이상조(전 인민군 부총참모장)의 1989년 기자회견 - 가짜설과 등장 배경 . <김일성 열전>의 작가 이명영의 '4인의 김일성 설' .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역사학과), 박갑동(전 남로당 총책), 이후락(중앙정보부장), 박창래(당시 신동아 기자) 인터뷰 - 가짜설 확산에 대한 북한의 책임 . 안찬일 박사(79년 월남, 건국대 객원교수), 와다 하루끼(동경대 명예교수) 24:19- 분단된 땅에 존재하는 두가지 모습의 김일성 - 신주백 박사(성균관대 강사) - 김일성의 유년시절 . 중국 길림시 . 손원태(김일성의 어린시절 친구),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 연구원) 인터뷰 -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의 길 . 옹성라자회의기념비: 항일유격대 창설결의 기념 . 김창순(북한연구소 이사장), 박창욱 명예교수(연변대 역사학과) 신주백 박사(성균관대 강사), 김우전(전 광복군 동지회 회장), 선우진(김구 비서), 이종석 박사(세종연구소 연구원), 한홍구 교수, 김성호 박사(연변대) 인터뷰 - 전투 지도자로 주목받던 김일성 . 동북항일연군 . 한홍구 교수, 이종석 박사, 김광서 교수, 김성호 박사 인터뷰 48:18- 대중의 신뢰와 소련의 지지 - 잡지[선구]: 김일성은 해방이후의 항일경력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얻음 49:46- 김일성의 이름에 응축된 분단의 역사 -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시작하여 우리사회에서 발견되는 작은 변화들 - 성공회대 '북한사회의 이해' 강좌 - 김우전(전 광복군 동지회 회장), 김유길(광복군) 인터뷰 53:39- 다음회 예고 54:17-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4회 | 20020127 | 57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 내용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시행된 삼청계획 5호작전. 대상 은 깡패와 전과자 등 이른바 불량배, 사회악들이었다. 대상자는 모두 60 755명. 이중에 B와 C급으로 분류된 39,742명이 전국 25개 부대에서 '삼청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검거과정에서부터 문제는 심각했다. 실적을 채우 기 위한 무차별 검거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대상이 되었으며, 이들은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되고 재판 없이 형식적인 심사만을 통해 군 부대에 강제수용되어 가혹한 훈련과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최고 5년의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모두가 강 압에 의한 불법행위였다. 희생은 엄청나고 충격적이었다. 88년 정부의 발표는 사망 54명에 후유증 사망 397명, 상해 및 장애자 2천8백명. 그러나 사망자 수만도 발표의 몇 배에 달할 것이란 증언과 주장들이다. 그리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권 이 철저하게 파괴당한 4만명은 누구인가? 정녕 모두가 깡패이고, 전과자 인가? 철저히 버림받고, 유린당하고, 파괴당한 채로 22년째 신음하고 있 는 삼청교육대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조명하고, 추악한 '삼청계획 5호작전'의 실체를 살펴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2:24- 전CM 03:57- 군 발포로 감호생 우광천, 남일홍 사망 - 당시 감호생이었던 명두안, 이병근, 신동기 등 증언 09:07- 1980.8.4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발표 - 포고령 13호, 국보위 출범, 불량배 소탕계획 - 강찬기 당시 성동서 형사계장 인터뷰 12:54-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고있는 윤병열과 어머니 유의식 15:08- 심사위원회에서 등급분류 심사, 등급 분류 기준 및 내용 - 이적(당시 신문사 기자), 강찬기(80년 당시 서울 성동서 형사계장) 인터뷰 17:52- 국군홍보관리소에서 제작한 '삼청교육대' 홍보 자료 20:15- 순화교육장, 순화교육 담당 조교 서약서 24:03- 88년 국회보고서, 33사단 사망자 26:45- 순화교육 중 웅변대회, 사회정화궐기대회 29:03- 10,016명 20개 부대에서 근로봉사 명령 34:36-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 80년 당시 노동복지회관으로 사용 36:27- 1981.1.24 비상계엄 해제 발표 - 보호감호결정 고지서 38:25- 사회보호위원회 구성도 41:57- 1988년 국방부 국정감사 - 사망자 50명 발표, 추가 사망자 4명으로 54명 인정 44:38- 33사단 입소 3일만에 사망한 고 신동훈 사망 진단서 47:24- 삼청교육대 관련 사망자 신고명단 총 54명 50:10- 1988.11.26 노태우대통령 삼청교육 피해자 보상 약속 담화 발표 - 2001년 7월, 대법원 김주열 외 4명에게 위로금 지급 판결 53:08- 삼청교육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 앓는 김창오 54:40- 다음회 예고 55:13-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3회 | 20020120 | 58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00:00- 타이틀
00:30- 전CM 02:33-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도쿄 거주, 84세) 인터뷰 05:31- 미군정 당시 빈발했던 테러사건들 06:45- 해방정국 당시의 실리보고서 09:41- 현준혁 암살 사건의 전모 - 사건일시: 평양, 1945.9.3 14:56- 당시 백의사 아지트였던 낙원동, 효자동, 퇴계로 - 김두한을 포섭한 것은 염동진 18:51- 김일성 저격사건 다룬 북한과 소련의 합작영화 <영원한 전우> - 정치공작대 대원: 김형집, 최기성, 김정의(김제철) - 염동진은 이들에게 권총 제공 25:44- 맹인장군이라고 불리운 백의사 사령 염동진 - 귀공자 타입의 미남이며, 권총의 명수 - 민족혁명당 가입, 활동 34:01- 여운형 암살 사건 - 사건 일시: 혜화동 로터리, 1947.7.19 39:04- 김두한이 지휘하는 대한민청의 파업 현장 투입, 진압 45:01- 한국.만주관련 정보에 기록된 백의사의 규모 47:58-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맞물린 백의사의 쇠퇴 48:37- 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배경에 백의사가 있었는지 여부 - 김구암살: 1949.6.26 54:21- 에필로그 55:31- 다음 회 예고 56:09-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2회 | 20020113 | 56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국가보안법 II-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내용
국가보안법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제7조 찬양?고무, 이적단 체 조항 등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 문제 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담고 있는 조항이다. 7조의 핵심적인 문제가 무 엇인지를 제기함으로써 결국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에 구현되기 위한 조 건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01:40- 전CM 03:12-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 - 경상대 교수 10명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기소 - 정진상 교수, 장상환 교수 인터뷰 05:20- 재미 한청련 사건 - 박태훈 인터뷰 - UN 인권이사회의 배상권고문 06:20- 국가보안법과 인권유린 - 최영도 변호사, 이진우 변호사 인터뷰 07:55- 보도지침 사건 - [말]: 권력과 언론의 음모(86.9월호) - 김주언(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국장, 당시 한국일보 기자), 김태홍(민주당 국회의원, 당시 <말> 편집장) 회고 - MBC 뉴스데스크(1999.9.11) - 백승헌 변호사 인터뷰 - 저자뿐만아니라, 영화화된 태백산맥의 관련자와 독자와 관람자 모두가 다 국가보안법의 위반자가 됨 - [태백산맥]의 조정래, 이적성 공방 . MBC 뉴스데스크(1999.911) . 백승헌 변호사 인터뷰 .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면, 원작의 영화화에 의한 관련자뿐만아니라 독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함 -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 논의 . <대학간행물 검토 보고서>(1989) . 백승헌 변호사, 이진우 변호사(찬성론) 인터뷰 12:48- 논란이 되었던 국가기밀누설 조항 - MBC 보도특집(1985.9.11): 학원에 뻗친 붉은손길 - 구미유학단 간첩 사건의 강용주 회고 - 백승헌 변호사 인터뷰 - 미국의 판례 . <국방성 문서>: 뉴욕 타임즈 간행(1971) . 대니얼 엘스버그(당시 국방성 연구원), 제임스 구데일(당시 뉴욕타임즈 부사장) 회고 . 마이틀 헤이먼(버클리 법대 총장) 인터뷰 18:17- 반국가단체 사건들 - 영남위원회 사건(1998) . 당시 영남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김창현(당시 울산동구청장), 홍정련, 이은미, 김이경 회고 . 박원순 변호사 인터뷰(참여연대) . 불법증거물 처분되었던 도청, 미행 자료들 - 이적단체 구성죄: 진보의련 사건 . 박균배(민의련 회원), 권정기(일산구보건소장, 진보의련 회원) 회고 23:52- 국가보안법의 가혹한 적용 - 80년대의 공안기관 기구표와 현재 기구표의 비교 - 수사기관의 고문 . 이태복(81년 전노련사건 구속), 강용주(85년 구미유학생사건 구속), 김성학(85년 납북어부사건 구속), 방양균(89년 서경원 방북사건 구속), 함주명(83년 간첩사건 구속) 회고 - 정형근 의원의 고문사건 . 서경원(전 국회의원) 회고 - 고문을 낳는 과잉수사 . 김근태(민주당), 강용주(전남대 의대 재학), 박원순 변호사 인터뷰 - 국가보안법에 대한 정부의 압력과 간섭 . 인혁당 사건 발표시 담당검사 4명 전원 사표제출(64년) . 장원찬(당시 사표제출 검사), 김영식(간첩선 조종사),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회고 . 71년의 사법파동 . 김이경(박경순 부인), 김근태(민주당), 백승헌 변호사 인터뷰 - 전향제도의 강제성 .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신현칠(사회안전법으로 14년 수감), 강용주(85년 구미유학생사건 구속, 준법서약 거부) 인터뷰 - 보호관찰대상자 강용주 . 강용주 인터뷰 39:43- 외국의 국가보안법 - 이철승(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 인터뷰 - 미국의 사례: 스미스법에 따라 공산당 간부 구속 - 미국의 사례, 인권탄압을 넘어 인권보호를 향함 . 스미스법에 따라 공산당 간부 구속기소, 6년뒤 무죄선고 . 엘렌 슈레커(<미국 공산당사> 저자), 마이클 헤이면(버클리 법대 총장) 인터뷰 - 분단국가인 대만의 사례, 국가안전법 상정 . 합법정당인 노동당이 존재 . 국가안전법이 존재하지만,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 . 오영원(대만 노동당 주석), 임서량(대만 장기수) 46:02-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 유영업(목포대,6년째 수배), 이노경진(경희대, 4째 수배), 이복순(유영업 어머니) 49:12-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은 무엇인가 - 백승헌 변호사, 강용주, 박원순 변호사 인터뷰 53:14- 다음회 예고 53:59-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 1회 | 20020106 | 53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국가보안법 I- 반공의 총과 칼> 내용
2000년 6월 지난 50년간 남과 북을 철저하게 갈라 놓았던 분단의 금기는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완전히 깨지는 듯 했다. 그리고 일년 뒤 민족통일 대축전 방북단 일행을 환영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엄 단하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방북단 중 16명은 공 항을 나오는 즉시 검찰에 연행되었다. 그들을 연행한 이유는 50여년간 남 한의 반공체제를 유지하는데 막대한 역할을 해왔던 바로 그 법, 국가보안 법 위반이었다. 명목상 남한의 민주주의와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 들어진 국가보안법. 그리고 개정과 폐지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 국가보안 법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 00:00- 타이틀 00:17- 프롤로그 01:47- 전CM 03:20- 디자이너 홍은주의 결혼식 - 신랑 김건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어 혼자의 결혼식을 올린 홍은주 - 장갑순(김건수의 어머니) 인터뷰 05:15- 김일성 분향소 설치문제로 수배된 진재영 - 진재영(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8년째 수배중) 인터뷰 07:03- 국가보안법의 공포 - 일제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공포되었음 - 선우종원(당시 검사), 이천재(전국연합 의장), 최영도 변호사, 백승헌 변호사 인터뷰 - 미군정청 여론조사(1946.7) - 국회 프락치사건(1949.4~8) . 김인식(제헌국회의원), 선우종원(당시검사) 인터뷰 - 조봉암(초대 내각 농림부장관) 사건 . 고 권대복(진보당 학생조직 책임자) 인터뷰 - 인민혁명당 사건 . 반유신 세력의 말살을 목적으로 함 . 강신옥(당시 민청학련 변호인), 이철(당시 민청학련 행동총책), 이철승(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 이진우 변호사 인터뷰 . 인혁당 희생자 추모제(1999.4.2) - 국가보안법의 찬성론 20:07- 국가보안법의 피해 - 김영선, 1975년 반공법 위반 - 한성철, 전 데레사여중 교사 - 최영도 변호사, 이천재 인터뷰 - 비전향장기수 신인영 석방(1998.3) . 고봉희(어머니) 인터뷰 . 아버지 신석운은 불고지죄로 구속 - 불고지죄로 구속된 오화섭 교수 . 오세철(아들) 교수 인터뷰 27:25- 80년대의 사건들 - 성조기 소각시위 . 이재영(82년 성조기 소각시위) 회고 - 미국의 사례 . 1984년 성조기 소각사건의 그레고리 존슨, 제시 초퍼(헌법학자), 마이클 헤이먼(버클리 법대 총장) 인터뷰 .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여 연방대법원 무죄선고 - 유성환 통일국시 발언(1986.10.14) . 유성환(당시 신민당의원) 인터뷰 35:00- 국가보안법의 적용 - 박원순 변호사 인터뷰 36:28- 87년 이후 크게 변한 대북정책 -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북한 송환 - 정주영 소떼 방북 - 그러나, 여전한 국보법 . 초등학생용 통일교재를 쓴 이장희 교수 구인 . 모내기라는 그림이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어 기소된 신학철(화가) . 도서관을 운영하며 이미 출판된 북한 소설을 소지,반포한 혐의로 구속된 장대현 . 이흥록 변호사 인터뷰 -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 . UN 인권이사회의 권고 . 라지브(엠니스티 한국 담당) 인터뷰 - 인권대통령 정권의 주장과 실상 . 영남위원회 사건: 증거자료의 조작으로 무죄선언 . 김창현(당시 울산동구청장) 인터뷰 -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반론 . 지영수(하남시 월남전우회 회장), 이경아(방북단 귀향시 폭행당함), 강정구 교수. 이철승 인터뷰 49:36- 계속되는 국가보안법 개폐 요구 - 2001.12.1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 행동의 날 - 2001.11.1 400회 민가협 목요집회 -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 51:41-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 15회 | 20010817 | 44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박정희와 레드 콤플렉스- 황태성 간첩 사건> 내용
1960년대는 민중의 힘으로 무능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선거를 통한 민주 정부 수립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구테타는 통일을 향 한 민중의 열기를 짓밟고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생명을 요구하며 군사독재 의 암울한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박정희는 쿠테타 직후 남한의 이중간첩 을 통해 '남북회담'을 제안한다. 북한에서는 과거에 박정희가 가장 따르고 존경했다는 황태성이라는 인물 이 오게 된다. 그는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함께 경북 김천지역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던 인물이다. 하지만 황태성은 결국 박정희의 손에 의 해 사형 당한다. 반공을 앞세우고 쿠테타에 성공한 박정희. 그러나 결국 박정희는 사상논쟁의 최초 피해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역사에 놓이게 된다. 과연 박정희는 왜 남북회담을 제의한 것이며 황태성은 박정희를 만나 무 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남북회담 대표로 참석한 강성국 씨를 통해 회 담 내용을 밝히고 밀사의 임무로 남하해 간첩으로 처형당한 황태성씨를 통해 현대사의 아픔을 짚어본다. 또한 1963년 대선 기간에서의 사상논쟁 을 바탕으로 이율배반적인 정치를 보여줬던 박정희의 사상을 검증해 봄으 로서 반공이 한국 정치에서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가를 고민해 본다. 00:00- 타이틀 00:14- 프롤로그 - 1997 대통령 후보 사상 검증 토론회 - 이동원(당시 박정희 의장 비서실장), 김경재(민주당 국회의원) 인터뷰 02:56- 전CM 05:13- 1963 5대 대통령 선거 - 윤보선으로부터 시작된 박정희와 공화당에 대한 사상논쟁 . 이상우(당시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 비록, 박정희 시대' 저자), 문명자(당시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 인터뷰 07:58- 대구 10월 항쟁 주도한 황태성 - 이준원(황태성과 함께 수감생활) 인터뷰 08:53- 박정희와 박상희, 황태성 - 이완범(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인터뷰 09:46- 1948 여순 반란 사건과 박정희 - 박정희의 재판기록 - 김점곤(당시 박정희 심문) 인터뷰 - 박정희의 사상경력에 대한 미국의 우려 . 톰슨(당시 미 국무부 한국담당) 인터뷰 - 북한에서도 황태성을 통해 박정희와의 접촉 시도 . 이상우, 김민하(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황태성 고향 후배) 인터뷰 14:09- 4.19로 대두된 평화 공존적 통일론 - 이영일(당시 민족통일학생연맹 선전위원장, 전 국회의원), 황헌(4월 혁명회 상임의장, 당시 민족통일학생연맹 조직위원장), 이장희(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인터뷰 - 남한의 통일 열기를 환영하며 다양한 정치적 공세를 펼치는 북한 . 4.19 이후 남한 내의 광범위한 사회운동과 접촉하려 시도, 이를 통해 통일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함 . 장해성(전 조선중앙통신기자), 박태균(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 인터뷰 17:29- 1961.5.16 쿠데타 - 통일열기 중단, 쿠데타 세력은 명분으로 반공을 내세움 - 이종석(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 이장희 인터뷰 - 1961.7.4 반공법 공포 . 중앙정보부 설립, 혁신세력 탄압 . 이완범 인터뷰 인터뷰 - 쿠데타 정부 행로에 대해 침묵한 북한 정부 . 이상우, 장해성 인터뷰 22:23- 1961년 9월 황태성 남파 - 박준홍(조귀분, 박상희 아들), 임미정(황태성의 조카딸), 김민하 인터뷰 - 황태성 사건 판결문 - 1961년 서해안에서 벌어진 분단 이후 남북 최초 비밀 접촉 . 황해도 용매도에서 진행 . 단절되었던 남북 교류 재개가 주요 목표 . 강성국(남북비밀대표 남측 대표, 전 서울시의원) 인터뷰 - 황태성 남행의 이유 . 북한측이 박정희의 신임장이나 위임장 요구 . 강성국, 트카첸코(당시 북한주재 소련대사관 영사과장) 인터뷰 - 황태성에게 사형 구형, 박정희의 의중은 무엇이었는가 . 임미정, 이종석, 강성국, 이동원(전 외무부 장관, 당시 박정희 의장 비서실장) 인터뷰 32:46- 1961년 박정희 미국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 -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미국의 승인을 받게 됨 34:24- 5대 대선 선거유세 도중 황태성 문제 대두 - 선거 유세와 함께 톱 기사로 다뤄짐 - 박정희는 황태성과의 관계를 인정하고 정면돌파 시도 - 박정희의 신문광고: 사상전력 인정, 야당 인사들을 낡은 메카시즘의 잔재라고 반격 - 사상문제가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변모 . 이상우,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인터뷰 - 1963년 대선에서 사상논쟁이 끼친 영향 . 김경재, 손호철 인터뷰 39:17- 황태성 총살형 집행, 그리고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 - 김민하 인터뷰 42:02- MBC스페셜 예고 42:46-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 14회 | 20010810 | 50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전향 공작과 양심의 자유> 내용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던 이 듬해 각 교도소에는 특명이 떨어진다. 모든 비전향 좌익수를 전향시키라 는 요지의 법무부 예규 108조 '전향공작 전담반 운영지침'이 각 교도소에 시달되면서 장기수들이 기억하는 소위 '전향 테러'가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전담반이 설치된 73년 하반기부터 75년까지 채 2년이 못되는 기간 동안 400여명에 이르던 전국의 비전향 좌익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 다. 과연 이 같은 쾌거를 거둔 전향공작의 묘수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전향공작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사에 대해 '대통령 직 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올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73년, 각지의 교도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 1995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비전향 좌익수 3명 - 양희철(36년 복역, 비전향), 서준식(인권운동 사랑방 대표), 신현칠(사회안전법으로 14년 구금) 인터뷰 02:35- 전CM 04:53- 장기수 전향 무효 선언(2001.2.14) - 권낙기(통일광장 대표), 김영식(26년 복역, 73년 전향), 한상열(전주 고백교회 목사, 김영식씨 출소 당시 후원) 인터뷰 07:42- 전향 - 전향의 법률적 의미와 근거 . 강용주(전향제도 헌법소원) 인터뷰 - 전향제도의 기원 . 일제시대 치안유지법 . 분단 이후 좌익수 통제 위한 목적에서 부활 09:44- 비전향 좌익수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 - 양희철, 권낙기(통혁당 사건으로 18년 복역, 비전향) 인터뷰 11:56- 73년 남아있던 좌익사상범에 대한 강제전향공작 - 권낙기, 김영식 인터뷰 - 좌익수 전향공작전담반 창설 - 겨울철에 행해진 고문 . 강신석(목사, 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 광주교도소 수감), 안학섭(43년 복역, 비전향) 인터뷰 - 흉악범이나 폭력전과가 있는 제소자를 이용한 구타 고문 . 떡봉이와 사랑몽치 . 양희철, 안학섭, 김영식, 서준식 인터뷰 - 물고문 . 안학섭, 서준식 인터뷰 -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1971) . 서준식 인터뷰 - 강제전향공작에 의한 사망에 대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 대부분 전향공작을 경험한 좌익수들의 증언에 의존 . 김형태 위원(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준하 과장(법무부 보안2과) 인터뷰 - 전향에는 어떠한 강제도 없었는가 . 73년에 비해 75년 절반으로 줄어든 비전향좌익수 수 . 73년 당시 전향공작 전담반 근무자, 같은 교도소에 있던 서준식, 전직 교정직 고위 공무원, 안학섭 인터뷰 - 중앙정보부의 전향공작 개입 . 전직 교정직 고위 공무원, 서옥렬(30년 복역), 김영식, 73년 전향공작 당시 교도관 근무자 인터뷰 27:44- 남북 화해분위기 속에서 굳이 강제적인 전향이 필요했나 - 이일재('남조선해방전략단사건'으로 20년 복역), 안학섭 인터뷰 - 이데올로기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 하는 싸움 . 반공, 반첩의 구호 아래 온국민이 한마음으로 단결하던 시대 . 이일재, 73년 당시 전향공작전담반 근무자, 신학운(73년 당시 전향공작전담반 근무) 인터뷰 31:19- 75년 사회안전법 - 서준식, 임방규(72년 만기출소 후 77년 사회안전법으로 재수감 13년 복역) - 사회안전법 최고단계인 보안감호처분 . 서준식 인터뷰 - 1989년 사회안전법 폐지 36:15- 92년 전향제도에 대한 선법소원 - 강용주, 이종걸(당시 헌법소원 담당변호사),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 당시 헌법소원 담당변호사) 인터뷰 41:45- 98년 사상전향제도 폐지, 준법서약제도 도입 - 조용환(92년 당시 인권단체 대표), 박수길(92년 당시 정부측 대표), 박상천(전 법무부 장관), 강용주 인터뷰 - 99년 2월 비전향장기수 17명 석방 45:13- 전향의 의미 - 김영식 인터뷰 47:54- 다음회 예고 48:28- 후CM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