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상세내용
제목/방영회 | 방영일 | 방영시간 | 상세보기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 3회 | 20010511 | 52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00:00- 타이틀
- 5.16 당시 핵심에 있었던 증언자들의 인터뷰로 밝혀본 5.16의 미스테리 03:26- 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장도영 05:02- 지난 40여년간 자신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는 장도영 - 박정희의 반혁명 재판 증언 - 김동수(당시 육군 참모총장 부관), 김재춘(5.16 주체), 이희영 (당시 서울지구 방첩대장) 인터뷰 08:47- 5.16 쿠데타 전의 군부 상황(장도영을 앞에 내세울 인물로 생각) - 선우종원(장면 총리 측근), 이희영(당시 서울지구 방첩대장) 인터뷰 14:49- 장도영의 5.16 전, 후의 상황 - 장도영 군사혁명 위원회 의장직 수락 29:46- 쿠데타 당시 칼멜수도원으로 도피하였던 장면 총리의 행적 - 장순(장면 총리 아들), 나다니엘 테어(당시 미 국무부 한국 담당), 홍석률(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인터뷰 - 매그루더(당시 유엔군 사령관), 램니쩌(미 합참의장) 메시지 43:33- 박정희의 쿠데타를 추인한 미국 45:08- 국가 재건 비상조치법 공포, 실질적인 권력 빼앗긴 장도영 - 선우종원(당시 한국 조폐공사 사장, 정면 측근) 인터뷰 - 장도영 회고록 '망향' 48:25- 클로징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 2회 | 20010504 | 55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보도연맹- 산자와 죽은자> 내용
한국전 초기 약 두달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보도연맹 사건 은 치밀하고 조직적인 학살이었다. 당시 이 학살이 육군, 해병대, 경찰, 정보기관 등 모든 권력기관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밝혀냄으로써 학살의 궁 극적인 책임 소재를 규명해 본다. 00:00- 타이틀 00:15- 프롤로그 02:10- 전CM 04:58- 경북 청도 곰티재 군보도연맹 피학살자 위령제 - 유족들 인터뷰 08:56- 국민보도연맹 강령.조직표 -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11:11- 보도연맹 학살의 주모자와 책임자 - 당시 상황에 대해 유족들 인터뷰, 선우종원(당시 치안국 정보수사 과장), 장석윤(50년 6~7월 내무부 치안국장) 인터뷰 16:14- 보도연맹 학살과 호림부대의 연관성 17:48- 제주 섯알오름 희생자 유해 발굴, 제주 모슬포 백조일손묘 - 제주도 주둔 해병대 조직표 - 신현준(당시 해병대 사령관) 인터뷰 24:07- 학살 관련 자료 수집하는 이도영(예비검속자 학살 때 부친 사망) 27:06- 당시 특무대가 있던 곳, 특무대 취조실 28:44- 경산 코발트 광산(보도연맹원 집단 학살지) 31:54- 육본정보국 소속 특무대(CIC)가 보도연맹 학살에 깊이 관련 - 장도영(당시 육본 정보국장), 미 CIC 소속 김영목, CIC 장교로 근무한 배학래 등의 증언 37:41- 보도연맹 학살의 공식 명령 계통 - 비상사태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 학살에 대해 언급한 듀퐁 대위의 월간 정보 보고 40:18- 대구 근교 학살, 브루스 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 저자) 인터뷰 41:35- 4.19 이후 진상규명에 관한 신문 보도 - 양신하(백조일손 유족회 고문) 인터뷰 44:15- 반공 내세우며 등장한 군사정부, 연좌제로 고통받은 학살자 후손들 47:17- 대구형무소 피학살자 명단 50:38- 다음회 예고 51:38-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1, 1회 | 20010427 | 54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보도연맹- 잊혀진 대학살> 내용
이승만 정권 당시 좌익 활동 경력이 있거나 혐의가 있었던 사람들을 체 제에 편입시키고 관리하기 위해 '보도연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러 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에 협력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은 무 차별 학살되었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1:32- 전CM 04:20- 청원군 오창면 창고 학살터(100여명 몰살) - 김현중(보도연맹원 학살사건 생존자) 인터뷰 06:22- 광주시 광산구 암탉굴, 목격자들 인터뷰 07:19-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3500명 총살 매장), 광산 수평갱 유골들 -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생존자 권재효, 김종철 인터뷰 11:50- 국민보도연맹 강령, 조직표 14:09- 선우종원(당시 치안국 정보수사과장) 보도연맹 창설 비화 인터뷰 -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17:42- 경기도 이천, 보도연맹원 100여명 아군에 의해 총살 18:51- 충북 청원의 옥녀봉, 산내 학살지 발굴, 전국 학살 지도 23:20- 미국 국립문서보존소의 당시의 사진과 관련 기록 25:30- 경산 코발트광산 현장 점검, 코발트광산 발굴회의 32:40- 보도연맹 가입문제 관련 1950년 2월 11일 정기국회 속기록, 신문자료 34:03- 보도연맹에 가입한 시인 정지용의 아들 정구관 인터뷰 - 고설봉(원로 연극인, 전 보도연맹원) 인터뷰 35:06- 정부의 보도연맹원들 학살 배경 -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38:08- 부산 구평동 학살지 - 홍중조(경남도민일보 논설위원) 인터뷰 41:19- 대전지역 전투, 장석윤(50년 6~7월 내무부 치안국장) 인터뷰 - 박명림(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인터뷰 47:16- 6.25 피학살 양민 부경유족회 창립 대회 49:56- 다음회 예고 51:15-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5회 | 20001022 | 55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고문, 끝나지 않은 전쟁> 내용
박종철, 권인숙, 김근태의 고문폭로 사건 등은 공공연한 비밀로 알고 있 던 고문의 실상을 사회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정부가 은폐시키고 축소시켜온 많은 고문 사건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아 직도 수많은 고문피해자들이 정부의 무책임 아래 방치되고 있다. 심지어 는 95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문민정부 이후 현재까지도 고문이 자행되 고 있음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고문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정부가 이러한 일련의 고문사건 들을 그대로 묻어 둔다면 그것은 고문을 인정하는 태도가 될 것이며 여전 히 고문의 문제를 안고 가는 것이 될 것이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2:19- 전CM 06:22- 고문피해자 방양균(당시 서경원 의원 비서관) - 1989.6 서경원 방북사건 09:44- 시국사건에서 습관처럼 자행된 고문 - 안기부 지하수사실 - 임채정 의원(79년 'YWCA' 사건 구속), 정화려(94년 '구국전위 사건' 구속) 인터뷰 - 전기고문 피해자, 김성학(85년 '납북어부 사건) . 이태복(81년 '전노련사건' 구속), 황인오(80년 '미스유니버스 사건' 구속) 인터뷰 - 고문 방법들 . 윤여연(86년' 민청련 사건' 구속), 김성학 인터뷰 . 물고문, 통닥구이, 비행기 태우기, 비녀꽂이 등 -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고문의 악습 . 이광우, 김민철 연구원(민족문제 연구소), 오창익 국장(인권실천 시민연대), 안상수 의원 인터뷰 22:59- 차풍길(83년 '간첩사건' 구속) - 차풍길, 전복안 인터뷰 29:16- 함주명(83년 '간첩사건' 구속) - 이덕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간사) 31:32- 부천 성고문 사건 - 이상수 의원(당시 권인숙 변호인단), 문귀동 경감, 권인숙, 이미경 의원(당시 '한국 여성단체 연합' 부회장) 인터뷰 35:40- 박종철 사망사건과 전국민의 반발 - 안상수 의원(당시 '박종철 사건' 담당 검사) 인터뷰 - 물고문에 의한 박종철 사망 38:45- 더욱 교묘해진 정신적 고문 - 정화려, 오창익 국장, 김창국 변호사, 방양균, 윤여연, 박창희, 양길승 의사 인터뷰 - 박창희('대학교수 간첩사건') . 박창희, 박재혁 인터뷰 - 최동(인노회 사건) 자살 . 최숙희, 깅병후(당시 최동의 정신과 의사), 양길승 의사 48:09- 고문이 남긴 상처들 - 황인오('미스유니버스 사건' 구속, 80년), 이태복('전노련 사건' 구속,81년), 김성학('납북어부 사건'), 안상수 의원, 오창익 국장, 이덕우 변호사 인터뷰 52:11- 2000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3:06-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4회 | 20001015 | 55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민족일보와 조용수> 내용
혁신계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혁신계 대변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조용수는 불과 몇 개월의 준비 끝에 민족일보를 창간한다. 민족일보 는 4.19 혁명이 가져온 자유의 공간에서 우리 민족의 비원인 통일문제와 소외된 근로대중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면 을 할애했다. 민족일보는 당시 절 대적인 호응을 받으며 가판에서는 판매 1위를 달렸다. 하지만 5.16 쿠데타의 군부 세력은 반공을 제일의의 국시로 삼고 대대적인 혁신계 검거에 나선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5월 18일 구속된다. 그리고 그해 12월 21일, 사형당한다. 언론사의 발행인을 사형에 처한 것은 일제시 대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00:00- 타이틀 00:12- 프롤로그 - 1961.12.21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조용수 01:56- 전CM 05:59- 사형장의 조용수 사장을 기억하는 지인들 - 혁신당 사건으로 수감되었던 허영무 - 중앙통일사회당 사건으로 수감되었던 송남헌 - 형님의 시신을 받은 동생 조용준 08:09- 가판 1위의 신문 민족일보 - 통일문제와 소외된 근로대중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면 할애 12:11- 민족신민 창간전 조용수의 활동 - 대륜중학교 졸업과 연세대학교 입학 - 민단에서 주요 간부를 지내며 재일교포들의 북송에 대해 반대 운동 - 조봉암 구명운동 . 죽산 조봉암을 사형으로 몰고간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자 조봉암 구명운동을 벌임 - 민의원 선거 낙선(1960.7.29) . 경북 청송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출마하나 낙선 17:41- 통일론을 주장한 혁신계 - 대중일보(가칭) 창간 계획 - 민족일보 창간 22:27- 통일을 절규한 민족일보 - 자주 중립화 통일론 주창 - 2대 악법 반대시위(1961.3.22) - 정간 압력을 받은 민족일보 - 조총련 자금설 - 평화통일론이 퍼지는 것을 우려하는 정권 33:50- 5.16과 민족일보 - 민족일보 간부들과 구속된 조용수 - 조선신문 발행자 이영근 - 조용수 사형 판결 - 박정희의 야욕 . 미국이 자신의 배경을 조사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좌익 사상 범을 체포하려는 프로그램을 실행 48:57- 조용수의 사형(1961.12.21) - 다른 네 명의 사형수와 함께 사형에 처해짐 50:55- 에필로그 - '조용수는 죽었지만 조용수는 옳았고 이겼다' 53:03- 다음회 예고 53:45-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3회 | 20001008 | 56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00:00- 타이틀
- 정인숙 여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소문과 의혹을 친오빠 정종욱, 수사관, 목격자 등 당시 사건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 통해 파헤치고 과거 밀실, 요정 정치의 폐해 지적 07:06- 1970년 3월 17일 절두산 앞 강변로에서 사건 발생 - 당시 행로 재연 15:41- 검찰측과 정인숙 오빠 정종욱의 상반된 주장 - 사건 발생 엿새만에 검찰은 정종욱의 자백을 받아냈고 오빠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23:06- 당시 신문 자료, 사건 현장 그린 경찰의 최초 감식 그림 34:17- 현장 체험 및 증언 39:02- 정인숙의 재학시절 사진, 선운각(당시 요정) 43:46- 제3공화국 당시의 요정정치, 정인숙 스캔들 49:34- 동생 정인숙의 묘 찾은 정종욱 51:51- 클로징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2회 | 20000924 | 51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00:00- 타이틀
00:15- 프롤로그 04:16- 1982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전개 - 문부식, 김은숙, 최인순, 이미옥, 최충언 13:10- 방화사건의 배경 - 김은숙, 문부식, 최충언, 이미옥, 김현장 인터뷰 - 광주학살의 배후인 전두환과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인식들에 대해 분노하고 많은사람에게 알리고자 함 24:04- 검거와 고문, 사회주의자로의 매도 - 김은숙, 이미옥, 문부식, 최충언, 함세웅 신부, 최기식 신부, 이돈명(당시 변호사) 인터뷰 34:58- 계속된 미문화원 점거 농성 -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반응과 책임 . 해리 던롭(당시 주한미대사관 정치참사관), 이양현(광주항쟁투쟁위원회), 글라이스틴(광주항쟁당시 주한미대사), 팀 셔록(미 저널리스트), 브루스 커밍스 교수 인터뷰 43:09- 방화사건, 희생과 기억되는 진실 - 김은숙, 문부식(현 '당대비평' 주간) 인터뷰 - 그 사건보다, 그때의 의미를 기억해주기를 강조 48:36- 다음회 예고 50:50- 클로징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1회 | 20000917 | 48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분단의 너울, 연좌제> 내용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남북의 적대적 대립관계 하에서 공공 연히 실시되어오던 연좌제는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등에서 강력한 사 회 통제 기제로 작동됐다. 주로 신원조회를 통한 신분상의 불이익과 감시 를 통해 이루어졌던 연좌제는 당사자들에게 크나큰 정신적인 족쇄로 작용 했다. 연좌제의 대상자는 주로 제주 4. 3 사건이나 거창, 함평, 문경 등 양민학살 피살자의 유족, 월북자나 부역자 가족, 국가보안법 등 간첩혐의 연루자의 가족 등이다. 분단의 가위눌림으로 작용하고 있는 연좌제는 법 적 근거도 없이 시행되면서 무수한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이를 폐지한다고 명문화하기도 했다. 과연, 연좌제는 사라졌는가! 그리고 연좌제를 작동시키던 기관과 조직, 연좌제의 근거가 됐던 관련기록들은 어떻게 됐는가! 남북한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지금, 연좌제로 인해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좌제의 폐해와 우리 의식 속에 내면화된 분단의식을 살펴보고 그 극복 방안을 모색해 본다. 00:00- 타이틀 00:15- 프롤로그 02:34- 전CM 06:08- 산청, 함양, 함평, 양민 학살, 대구 가창리 - 이광달(예비검속 피살자 유족), 서중석 교수 인터뷰 10:13- 5.16 쿠데타 세력과 제주 4.3 사건 - 이형욱(4.3 사건 당시 대살로 아내를 잃음), 서중석 교수 인터뷰 14:52- 4.3 연좌제 피해 - 제주 4.3 도민연대 . 연좌제 피해에 관한 설문지 21:18- 월북자 가족의 연좌제 피해 - 오형재 교수(월북시인의 동생) 인터뷰 - 이지연(방송인), 이광달(조각가), 이문열(소설가) 인터뷰 - 허화평(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김영범 교수 인터뷰 29:22- 연좌제 폐지, 그러나 계속되는 사찰과 감시 - 이계준(아들이 교원임용에서 제외됨) 인터뷰 - 이장희 교수, 김영범 교수, 김동춘 교수, 김용갑 의원 인터뷰 - 연좌제로 교사임용에서 제외된 차정원(초등학교 교사) 40:20- 분단의 멍에, 연좌제 - 김정대(제주 4.3 피해자), 이도영(제주 4.3 예비검속 때 아버지 피살), 이광달(예비검속 피살자 유족), 김동춘 교수 인터뷰 - 박동운(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18년 복역) 46:01- 다음회 예고 46:41-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10회 | 20000903 | 54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전태일과 그 후> 내용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했던 사람들 이야 기를 소개한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비참 한 노동현실을 돌아보고, 노동자들이 죽음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2:27- 전CM 06:30- 전태일의 분신, 전태일 사건의 충격과 파장 17:56- 사건 무마 위한 8천만원의 거액 제의 뿌리친 어머니 이소선 21:16-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이던 YH 김경숙 투신 25:03- 동일방직 여공들 나체 시위 - 노조 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공권력과 결탁한 회사측 행동대원들 의 똥물 세례 29:08-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노동자들, 블랙리스트에 의한 재취업 금지 - 집단 분신 현장 32:16- 경동산업 집단 분신 노조위원장 비롯한 5명의 분신 - 분신 과정에서 생존한 이종화씨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 39:16- 소외된 탄광 노동자 성완희 분신 43:01- 박종만, 박영진의 분신, 그 후 변화된 주변인들의 삶 51:04- 다음회 예고 51:42- 후CM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0, 9회 | 20000827 | 49분 | 상세열기 |
방송정보
방송내용
<남북 교류의 선행자들> 내용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 교류 협력사업이 크게 늘면 서 남북을 잇는 중개인들과 협력 기업체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해졌 다. 이들을 통해서 투자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서 다양한 방법으로 남북이 연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즉, 남북간의 긴장을 이용해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펼쳐진 새로운 국면은 많은 기대와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 하고 있다. 남북간 대결 구도 속에서 양쪽을 연결했던 남북 교류의 선행 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교류의 현장을 밀착 조명해본다.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과 때로 부닥쳐온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현실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 그들의 활동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00:00- 타이틀 00:13- 프롤로그 01:26- 전CM 04:59- 남북 중개의 대모 박경윤 금강산 국제그룹 회장 - 일본, 중국, 대만 등을 무대로 북한에 투자하려는 기업들과 북 한을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 담당 14:16- 연변 과기대 총장 김진경의 대북 지원사업 - 북한 내 김순권 박사의 수퍼옥수수 재배와 김진홍 목사의 두레마을 건설사업 주선 17:05-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 방북을 도운 고바야시 케이지 - 고바야시 케이지(전 아사히신문 서울 지국장) 인터뷰 19:27- 남한과의 교류를 위해 '중개인'이 필요했던 북한 22:01- 남북 중개인들의 역할 - 박경윤 금강산 국제그룹 회장 - 김진경 연변 과기대 총장 30:57- 남북한의 정보기관에 이용된 중개인들 - 북풍사건(안기부가 주도한 대선 공작의 일환으로 야당의 대북 커넥션 의혹 제기), 대북 쌀 지원(1995.6.25) 36:59- 나진.부산간 직항로 개설한 전용만(현통그룹 회장) 41:20- 남과 북을 이어왔던 중개인들에 대한 평가 47:05- 다음회 예고 47:39- 후CM |
프로그램 구입안내
02-789-0123- 평일:09:00~18:00
- 점심:12:00~13:00
- 토요일, 공휴일 휴무